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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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월세 내는 게 아까워서 전세대출을 알아봤는데 주변에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친구들을 보고 포기했어요.”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사는 대학원생 A씨(28)는 "전세보증금 사고 소식에 전세 전환 계획을 접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전세 사기와 깡통전세(매매가보다 전셋값이 높은 주택)에 따른 역전세난이 서울 주요 대학가에도 번지고 있다. 원룸 전세를 찾는 학생들은 씨가 말랐고 전세 거래량도 예년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반토막 난 원룸 전세 거래

2일 찾은 서울 봉천동의 원룸촌 일대 중개업소들은 대학생들의 신학기를 앞둔 이사철임에도 집을 보는 사람 없이 한산했다. 서울대 자취생들이 주로 사는 서울대입구역 원룸촌의 A공인 관계자는 "원룸 전세 거래가 작년에 비해 절반 이하로 줄었다"고 토로했다. 이른바 '깡통전세' 현상이 심화하면서 대학가에서도 전세보증금 사고에 대한 우려가 퍼졌기 때문이다.

빌라에서 전세와 월세 계약이 차지하는 비중이 역전됐다는 게 현지 중개업계의 설명이다. 현지 B공인 관계자는 "작년 겨울엔 전세 60%, 월세 40% 정도였는데 요즘엔 전세 비중이 20%까지 낮아졌다"며 "전세 문의는 아예 없고 오히려 월세가 바로 나가는 편"이라고 말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서울 관악구의 빌라 전세 거래량은 작년 12월 170건으로, 전년 동월(275건)보다 40% 가까이 줄었다. 반면 월세 거래량은 2021년 12월 214건, 작년 12월 193건으로 큰 차이가 없다.

전세 보증금 사고에 대한 걱정이 학생들의 전세 수요를 위축하는 핵심 요인이라는 분석이다. 예전에는 대부분 학생들이 저리의 청년 전세대출을 받아 전세로 옮기려 했는데 요즘엔 오히려 전세를 꺼리고 있다는 얘기다. 금리가 급격히 오르고 전국적으로 전세 사고가 잇따른 여파다.

실제로 계약기간이 끝났는데 다른 세입자를 찾지 못해 전전긍긍한 원룸 임차인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C공인 관계자는 "전세 계약이 끝났는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는 임차인이 밀려 있다"며 "새 세입자가 나오지 않아 원래 1억6000만원에 나갔던 원룸을 주인이 1억1000만원까지 낮춰서 내놨는데도 집 보러 오는 사람이 없다"고 전했다.
"보증금 못 받을까 무섭다"…대학가도 '깡통전세' 공포 확산

"전세 방지 대책 실효성 의문"

대학생과 외국인 재학생을 주요 수요층으로 삼은 성북구 안암·제기동 일대 전세 시장도 찾는 사람이 없어 한산했다. 현지 중개업소들은 특히 학생들이 주로 방을 구하는 안암역과 고려대역 인근은 작년 말부터 전세 거래가 거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안암동의 D공인 대표는 "전용 15㎡짜리가 전세가 1억원 정도 한다"며 "간혹 2억원대 원룸도 있는데 계약이 이뤄지진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인근에 3억~3억2000만원대 전세 물건도 있긴 한데 깡통전세라서 취급도 안 한다"고 덧붙였다.

전세를 찾는 학생들의 분위기도 바뀌었다. 중개업소에 전세 보증보험 가입 여부와 임대인 신원 등을 꼼꼼히 따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봉천동의 E공인 대표는 "원룸 수요자들은 전세보증금 사고 발생 시 최우선변제금액인 5000만원을 넘어서는 보증금에 대해서 특히 신중하다"며 "보증금이 큰 전세보다 월세를 선호하게 됐다"고 말했다.

정부의 전세 사기 방지 대책을 내놓더라도 전세 시장 분위기를 반전시키긴 어려울 것이란 게 현장 분위기다 한 공인중개사는 "중개업소와 임대인이 기록을 남기지 않으면 공모 사실을 입증할 증거가 있겠느냐"며 "정황을 포착하더라도 중개업소 입장에서 ‘아니다’라고 잡아떼면 그만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시욱/오유림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