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제2 중동 붐'을 기회로 삼으려면
“제2 중동 붐을 준비해야 한다.”

아랍에미리트(UAE) 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5일 국무회의에서 꺼낸 얘기다. 윤 대통령은 순방 기간 ‘1호 영업사원’을 자처하며 활발한 비즈니스 외교를 펼쳤다. 구체적인 성과도 나왔다. 무바달라 등 현지 국부펀드들이 한국 기업에 300억달러(약 37조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50여 건의 투자 양해각서(MOU)도 체결됐다. 수소와 에너지, 방산 등과 관련한 제품 및 기술을 공급하는 게 골자다.

또 다른 중동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가 추진 중인 ‘네옴시티 프로젝트’에 대한 기대도 상당하다. 네옴시티는 만리장성 이후 최대의 토목공사로 불린다. 2030년까지 사막 한가운데에 서울의 40배가 넘는 친환경 인공도시를 세우는 프로젝트로, 사업비만 최소 70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ESG·DX 전환 '빅픽처' 필요

우리 정부와 기업이 중동 프로젝트에 의욕을 보이는 것은 뒷걸음질하는 경제 상황과 맞물려 있다. 국내 주요 기업들의 실적은 악화일로다. 미국의 금리 인상과 우크라이나 전쟁, 글로벌 경기침체 등의 여파다. 국가 경제도 흔들리고 있다. 저성장 흐름이 고착화했고, 경상수지도 적자로 돌아섰다. 돌파구 마련이 절실한 상황에서 수백조원짜리 사업이 구체화하니 몸이 달아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나친 낙관은 금물이다. 지금까지 나온 성과의 대부분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MOU다. 상황이 달라지면 사업 파트너가 바뀌거나 사업 자체가 취소될 수 있다. 과거 정권에서도 대통령이 순방 후 받아온 ‘선물 꾸러미’가 우리 기업의 실적으로 이어지지 못한 전례가 적지 않았다. UAE와 사우디 등이 대역사를 시작한 것은 ‘포스트 석유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이 프로젝트에서 두각을 나타내려면 ESG(환경·사회·지배구조)·디지털 전환 등과 관련한 ‘빅픽처’가 필요하다. 개별 시설이나 제품도 잘 만들어야겠지만, 이것들을 어떻게 연결해 차별화된 가치를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게 더 중요하다. 중동을 겨냥하고 있는 기업들이 적극적인 외부 협업을 통해 대규모 솔루션 비즈니스와 관련한 경험을 키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글로벌 통상 전쟁에도 대비해야

최근 진행되는 글로벌 프로젝트들은 대부분 ‘프로젝트 파이낸싱’ 방식으로 이뤄진다. 참가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자금을 마련해 공사를 마무리한 후에야 잔금을 받을 수 있다. 예기치 않은 사태로 공사 기간이 늘어나거나 감리 단계에서 문제가 생길 경우 수주에 성공하고도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정부는 치밀한 통상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 지난해 한국수력원자력은 폴란드의 첫 원자력발전소 사업자 선정에서 미국 원전업체 웨스팅하우스에 밀렸다. 가격 경쟁력은 한수원이 앞섰지만, 미국 정부가 ‘안보’를 내세우며 자국 업체의 편을 들자 결과가 뒤집혔다. 중동에서도 이런 일이 반복될 수 있다.

오일 쇼크로 글로벌 경제가 흔들렸던 1970년대 한국은 중동 특수 덕을 톡톡히 봤다. 이때 마련한 오일 달러에 힘입어 중진국 도약의 기틀을 만들었다. 50년 만에 다시 찾아온 ‘중동 붐’을 도약의 기회로 삼기 위해 필요한 것은 차분한 마음과 치밀한 준비다. ‘코리아 원팀’의 선전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