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 "그가 베푼 지혜, 친절함, 헌신에 감사"
장례 미사 뒤 요한 바오로 2세가 안장됐던 묘역에서 영면
독일·이탈리아 정부 대표단만 공식 초청…수만명 운집
'전 교황' 베네딕토 16세 장례 미사 봉헌…현 교황이 주례(종합)
생전에 교황직을 사임하며 가톨릭 역사를 새로 쓴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이 5일(현지시간) 전 세계인들과 마지막 작별을 고했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장례 미사가 이날 오전 9시 30분(한국시간 오후 5시 30분)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엄숙하게 거행됐다.

현직 교황인 프란치스코가 장례 미사를 주례했다.

가톨릭 2천년 역사상 후임 교황이 전임 교황의 장례 미사를 집전한 것은 1802년 비오 7세 교황(후임)과 비오 6세 교황(전임) 이후 이번이 역대 2번째다.

즉위 8년 만인 2013년 건강 문제를 이유로 교황직에서 스스로 물러나며 가톨릭 역사상 598년 만에 생전 퇴위한 교황인 베네딕토 16세는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들고 이승과 영원히 작별했다.

장례 미사가 열리기 40분 전인 오전 8시 50분,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시신이 누인 소박한 목관이 성 베드로 대성전 바깥으로 운구돼 광장의 야외 제단 앞에 놓였다.

'전 교황' 베네딕토 16세 장례 미사 봉헌…현 교황이 주례(종합)
삼나무 관 속에는 고위 성직자의 책임과 권한을 상징하는 팔리움(양털로 짠 고리 모양의 띠), 베네딕토 16세의 재위 기간 주조된 동전과 메달, 그의 재위 기간 업적을 담은 두루마리 형태의 문서가 철제 원통에 봉인돼 간직됐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이 재위한 8년간 사제들의 성범죄와 결연히 맞서 싸운 점 등이 업적으로 기록됐다고 교황청은 설명했다.

이 문서에서 베네딕토 16세는 '명예 교황'으로 지칭됐다.

관이 운구되자 광장을 가득 메운 신자들은 길고 우렁찬 박수를 보냈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오랜 개인 비서인 게오르그 겐스바인 대주교가 관 위에 펼쳐진 복음서에 입을 맞췄다.

휠체어를 타고 광장에 모습을 드러낸 프란치스코 교황은 불편한 무릎 탓에 앉아서 장례 미사를 집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강론에서 "그가 몇 년간 우리에게 베풀어준 지혜, 친절함, 헌신에 감사하다"며 "주님, 당신이 베네딕트의 목소리를 영원히 듣는 것이 당신의 기쁨이 되길"이라고 기원했다.

베네딕토 16세가 현직 교황이 아니기에 교황청은 바티칸이 속한 이탈리아와 그의 모국인 독일 대표단만 이번 장례 미사에 공식 초청했다.

'전 교황' 베네딕토 16세 장례 미사 봉헌…현 교황이 주례(종합)
이탈리아는 세르조 마타렐라 대통령과 조르자 멜로니 총리, 독일은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 올라프 숄츠 총리, 마르쿠스 죄더 바이에른주 총리 등이 참석했다.

필리프 벨기에 국왕과 소피아 스페인 왕대비 등 왕족들과 유럽 각국 지도자 등은 개인 자격으로 참석해 광장 중앙에 마련된 귀빈석에 자리 잡았다.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는 자국의 주교황청 대사가 대표로 장례 미사에 참석했다.

우리나라는 오현주 신임 주교황청 한국 대사가 우리 정부를 대표해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마지막 길을 지켜봤다.

염수정 추기경과 서울대교구장인 정순택 대주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인 이용훈 주교와 사무국장인 신우식 신부 등이 한국 천주교 조문단으로 참석했다.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인 유흥식 추기경도 참석해 한마음으로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영면을 기원했다.

'전 교황' 베네딕토 16세 장례 미사 봉헌…현 교황이 주례(종합)
장례 미사는 약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됐고, 미사가 끝난 베네딕토 16세의 관은 지하 묘지 안장을 위해 성 베드로 대성전으로 다시 들어갔다.

운구 행렬은 프란치스코 교황 앞에서 잠시 멈췄다.

휠체어에서 일어선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호를 긋고 관 위에 손을 올린 뒤 잠시 묵상했다.

좁은 계단을 내려가 지하 묘지에서 진행되는 안장 의식은 비공개로 진행된다.

붉은 띠로 관을 둘러 닫고 아연으로 만든 두 번째 관과 참나무로 만든 세 번째 관에 차례로 모셔진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은 역대 교황 91명이 안장돼 있고, 전임자인 요한 바오로 2세가 이장되기 전까지 안장돼 있던 바로 그 묘역에서 영면한다.

독일 출신의 베네딕토 16세는 당대 최고의 신학자로 명성을 얻었고, 그 신학의 연장선에서 교회의 전통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보수적이며 전통적이었던 베네딕토 16세와 진보적이며 개방적인 프란치스코의 관계는 2019년 '두 교황'이라는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은 지난달 31일 바티칸시국의 한 수도원에서 95세로 선종했다.

고인은 2013년 교황직에서 사임 후 모국인 독일로 돌아가지 않고 이곳에서 여생을 보냈다.

이번 장례 미사에는 추기경 125명, 주교 200명, 성직자 3천700명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몰려든 가톨릭 신도와 로마 시민 등 수만명이 운집했다.

이탈리아 안사(ANSA) 통신은 새벽 6시 30분부터 장례 미사에 입장하기 위한 대기 줄이 길게 이어졌다고 전했다.

앞서 베네딕토 16세의 시신이 안치됐던 성 베드로 대성전에는 사흘간 약 20만명이 방문해 조문했다고 교황청이 밝혔다.

이탈리아 정부는 장례 미사가 안전하게 치러질 수 있도록 보안요원 1천명 이상을 동원해 삼엄한 경비를 펼쳤다.

교황청 주변 영공은 폐쇄됐다.

이탈리아 정부는 전국의 관공서에 조의를 표하는 반기 게양을 지시했다.

'전 교황' 베네딕토 16세 장례 미사 봉헌…현 교황이 주례(종합)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