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밥통·꼰대형 임금이라지만..."난, 호봉제가 좋다" [전민정의 출근 중]




● 당신은 호봉제인가요, 연봉제인가요?

근속 연수에 따라 저절로 임금이 올라가는 체계인 호봉제. 연공급제라고도 하죠. 흔히 공무원이나 공공기관에서 임금체계로 호봉제를 택하고 있어 누군가는 '철밥통' 임금이라고도 부릅니다.

지난해 고용노동부 '사업체노동력조사 부가조사'를 보면 100인 이상 기업 중 57.6%가 호봉제를 시행하고 있었는데요.

윤석열 정부는 절반이 넘는 회사가 선택한 호봉제를 직무의 난이도나 가치에 따라 임금을 달리 책정하는 직무급제나 작업성과나 능률을 중심으로 한 성과급제 중심으로 임금체계 개편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업무능력이나 직무와 관계없이 좋은 성과에도 연차가 높은 선임보다 적은 월급을 받을 수밖에 없는 현재의 낡은 임금체계에 대한 개편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 MZ세대 불만 많고 대기업 남성에게만 유리한 '호봉제'?

윤 정부의 노동시장 개혁안을 연구 중인 미래노동시장 연구회도 이러한 틀 안에서 호봉제 축소를 제안했습니다. 근거는 연공급형 임금체계가 '노조가 있는 대기업에 다니는 정규직 남성'에게만 유리하며 중고령 근로자의 고용불안을 부추길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지난해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결과 중소기업 근로자 임금은 대기업 근로자의 56.3% 수준이었는데, 여성의 경우 남성의 69.6%,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72.4%였습니다.

연구회는 이러한 격차가 나타나는 이유를 "노조가 있는 사업장 종사 정규직 남성만 연공을 축적할 수 있는 유일한 계층이기 때문"으로 꼽으면서 "비정규직·중소기업 종사자나 여성은 구조적으로 연공을 쌓기 어렵고 대부분은 임금체계가 없는 일자리를 가질 수 없다는 겁니다.

또 연공급형 임금체계는 중고령 노동자 고용불안도 초래한다는 것도 연구회의 주장입니다. 해가갈 수록 임금이 쌓이기 때문에 인건비 문제로 '희망퇴직'이나 '명예퇴직'으로 숙련된 근로자들이 회사에서 내쫒길 수 있어서 입니다.

무엇보다 현재의 호봉제로 세대간의 갈등이 심화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철밥통·꼰대형 임금이라지만..."난, 호봉제가 좋다" [전민정의 출근 중]
고용노동부가 MZ세대(1982~2012년생) 직장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커뮤니티 애플리케이션 '블라인드'에서 설문조사를 했더니 응답자의 86%가 '회사의 임금 결정 기준이 공정하지 않다'고 답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저성장 시대, 고용 불안정성에 시달리고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MZ세대로서는 업무능력이나 직무와 관계없이 연차만 채우면 높은 연봉을 받은 '무임 승차' 때문에 열심히 일할 동기를 얻기가 힘들다는 불만입니다.

● 하지만 국민 절반은 직무·성과급제 반대한다고?

철밥통·꼰대형 임금이라지만..."난, 호봉제가 좋다" [전민정의 출근 중]
낡은 임금체계에 대한 개편 필요성은 커지지만, 노동계는 '직무·성과급제'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급격히 직무급제를 도입하면 기업이 임금이 깎아 비용절감에 악용하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겁니다. 사실상 기수별 공채 중심의 '한국 문화'에 맞지 않는다고도 주장합니다.

직무에 대한 전문성이나 권한을 넓게 인정해 필요할 때 상시채용 하는 해외와 달리, 우리나라의 경우 중견기업 이상이라면 대부분 공채 형식으로 채용한 뒤 순환보직을 맡기는 식이기 때문입니다.

한국노총은 지난달 말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정부의 임금체계 개편에 관한 여론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 50.7%는 직무·성과급제 임금개편에 '반대한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내놓았는데요.

이 조사에서는 18~29세 임금근로자의 경우 물론, 연공급에 반대하는 응답자가 전체의 34.4%로 가장 많았지만, 반대하는 비율도 전체 10명 중 3명, 28.9%나 됐습니다.

노동계 자체 설문이기 때문에 정부 등에선 조사 대상이나 항목 등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의구심을 제기했지만 사실 현장에서도 여전히 의견이 분분합니다.

일부에선 상사나 인사 부서의 자의적 평가를 배제할 수 없는 연봉제에 의구심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어찌보면 호봉제가 더 공정하다는 거죠.

최근 5%대 고물가가 이어지면서 실질임금이 줄어든다는 점도 안정적인 호봉제를 선호하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살림살이가 빠듯할 땐 고정적으로 수입이 들어오는 게 최고라는 인식이 크니까요.

● 급격한 임금체계 개편 보단 공정한 성과 평가가 우선

결국엔 기존 호봉제 내에서 연공성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점진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고령 근로자 계속고용과 청년층 일자리 진입, 또한 고용형태나 기업규모, 성별에 따른 임금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연공형 임금체계 전환이 불가피하다지만,

우리의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는 거죠.

전문가들은 직무의 상대적 가치와 난이도에 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한 성과 평가 체계를 마련하고 인사와 채용 체계를 개편할 때 컨설팅도 전제돼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또 호봉제에서 직무급제로 이행할 때 중간 단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 노사정 차원에서의 논의도 필요해 보입니다.


전민정기자 jmj@wowtv.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