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프리즘] 한전 민영화 다시 토론할 때다
한국전력은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 고마운 존재였다. 조선전업, 경성전기, 남선전기 등 3개 회사가 통합해 한전으로 출범한 1961년 이후 싼 값에 끊김없이 전기를 공급해 왔다. 2011년 9월 15일 블랙아웃(대규모 정전) 때를 제외하곤 밤을 밝혀주고 겨울철 난방, 여름철 냉방을 책임져 왔다. 낮은 전기료를 유지한 것은 기업들이 세계 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해준 밑바탕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런 한전이 요즘은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채권시장에서 한전이 매일같이 자금을 끌어가다 보니 민간 기업들이 아우성을 치고 있다. 한전 때문에 회사채 발행을 못하겠다는 것이다. 제발 은행에서 대출받으라는 말까지 나온다. 자금시장을 교란하는 주범이라느니, 블랙홀이라느니 손가락질당하고 있는 게 요즘 한전이다.

한전이 이런 처지에 내몰린 것은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다. 한전은 발전 자회사와 민간 회사에서 전력을 사와 소비자에게 전력을 판매하는 것이 사업의 핵심이다. 전력 구입비와 전력 판매액이 비용과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비용이 매출보다 크면 적자가 불가피하다. 그 차이가 지난해엔 5조8000억원이었으며 올해는 30조~40조원으로 예상된다.

올해를 좀 더 구체적으로 보자. 한전이 전력을 사오는 데 필요한 돈이 대략 84조원이고 인건비 시설투자비 등을 감안하면 100조원 이상이 필요하다. 하지만 매출은 68조원 수준으로 추산되고 있다. 써야 하는 돈은 있는데 들어오는 돈이 적으면 그 차이만큼 빌릴 수밖에 없다. 한전이 대규모로 채권을 발행하는 이유다. 한전이 돈을 빌리지 않으면 한국은 언제 블랙아웃 상태에 빠지더라도 이상할 게 없다.

한전의 적자는 정부가 전기료를 올리지 못하도록 억누르고 있어서다. 한전 안팎에선 현재보다 전기료를 50% 정도 인상하면 한전이 손실을 면하는 기업이 될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대책은 뭘까. 단기적으론 전기료를 올리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단기간 전기료를 가파르게 인상하는 것을 용인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조금 더 본질적인 처방이 필요하다. 그 방법 중 하나가 민영화다. 민영화의 핵심은 가격 결정권을 정부에서 기업에 돌려주는 것이다. 손실을 정부가 세금으로 메워주는 것이나 전력 소비자(대다수 국민)가 메워주는 것이나 실상은 같다. 전기료를 올리면 전기 사용이 줄게 돼 외국에서 연료인 천연가스나 석탄 수입을 줄이는 효과도 나타날 수 있다.

민영화의 효과는 다른 곳에서도 기대할 수 있다. 한전은 부인하겠지만 공기업은 특성상 민간 기업보다 효율성이 떨어진다. 낭비 요인이 꽤 있다는 얘기다. 민간에서 한전을 운영하면 이른바 방만 경영을 현저히 줄일 수 있다.

한국은 1999년 민영화를 염두에 둔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결정한 바 있다. 3단계 계획이었지만 1단계에서 중단됐다. 특히 2000년대 초반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블랙아웃이 발생하고 그 원인으로 민영화가 거론되자 2004년 한전 구조개편 작업은 없던 일이 됐다.

지금은 유럽식 전력회사 민영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유럽은 전력산업을 민간 경쟁 체제로 하되 전기료는 정부와 협의하는 것이 특징이다. 반(半)민영화라 할 수 있다. 영국 독일 등의 정부는 연료비가 뛰면 전기료 인상을 용인하고 있다.

한전은 정상기업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경제 전체가 제대로 굴러간다. 20년 가까이 중단됐던 민영화 논의를 다시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