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간 막혔던 미국 투자이민 길이 지난 5월부터 다시 열리면서 자산가를 중심으로 미국 이민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고 한다. 핵심인 EB-5는 미국 내 일자리를 만드는 미국 법인에 투자하고 일정 요건을 갖추면 영주권을 주는 비자 제도다.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나라를 떠나겠다는 사람과 돈이 급증한다고 하니 여간 걱정스럽지 않다.

10월 18일자 한경 보도에 따르면 자녀가 유학 중인 자산가들 중 상당수가 이민 문의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업체들은 두 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하나는 이민으로 미국 영주권을 취득할 경우 자녀의 취업 기회가 크게 넓어지고, 또 하나는 상속·증여세 부담이 크게 낮다는 것이다. 한국의 증여세 최고세율은 50%에 달하지만 미국은 1170만달러(약 167억원)까지는 면제한다. 여기에 고액 납세자를 존경하기는커녕 감세정책만 나왔다 하면 부자 감세라며 몰아붙이는 사회 풍토도 일정 부분 작용했을 것이다.

이민은 자산가들만 원하는 것이 아니다. 젊은 세대와 유학생 사이에서도 ‘탈(脫)한국’에 대한 얘기가 점차 퍼지고 있다는 전언이다.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생산가능인구 감소, 양질의 일자리 부족, 높은 부동산 가격, 연금제도의 지속성에 대한 불신, 북핵으로 야기된 지정학적 불안, 극단적 정치적 갈등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본다. 매년 20만 명 안팎에 이르는 해외 유학생이 현지 취업을 선호하는 것도 일시적 유행으로 봐 넘길 일이 아니다. 대부분 선진 대학에서 학문이나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나간 고급 인력들이다. 이들이 국내 산업계로 돌아오지 않고 아예 외국에 눌러앉아 살겠다고 하는 것은 그 자체로 국가적 손실이다. 자산가든, 젊은 인재들이든 한국을 떠나려는 사람들을 손가락질할 일만은 아니다. 국수주의적 태도로는 우리 내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더욱이 국적 선택은 우리 모두의 자유다.

관건은 이들이 한국에 계속 머물거나 돌아올 수 있도록 경제의 지속 가능성과 사회 발전에 대한 신뢰, 우리가 한마음으로 안보 불안과 경제 위기를 극복해나갈 수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는 점이다. 국민들이 과거보다는 미래, 국내보다는 해외에 눈높이를 맞추면서 한 차원 높은 선진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정부는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를 더욱 늘려 모든 국민이 교육과 성장 기회를 향유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