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발전법상 남북합의 효력 정지하려면 '기한' 정해야
"9·19합의 파기는 법률상 불가능…기한정해 효력정지만 가능"
정치권 일각에서 거론되고 있는 9·19 남북군사합의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의 전면 파기는 국내법상 불가능하고 따로 기한을 정해 효력을 정지할 수만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14일 남북한의 기본적인 관계와 남북관계 발전 관련 사항을 규정한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남북관계발전법)에 따르면, 남북 간 체결된 합의서를 파기하는 것은 이 법률에 위배된다.

이 법률 제23조 2항에는 '대통령은 남북관계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하거나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기간을 정하여 남북합의서의 효력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정지시킬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이 법률상 '남북합의서'는 정부와 북한 당국 간에 문서의 형식으로 체결된 모든 합의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2018년 체결된 9·19 남북군사합의와 1992년 발효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비롯한 남북합의서는 대통령이 전부 또는 일부의 효력을 정지시킬 수 있지만, 반드시 '언제부터 언제까지 효력을 정지한다'는 방식으로 기한을 정해야 한다는 의미다.

국회의 비준 동의를 얻은 합의서의 경우는 효력 정지를 위해선 국회의 동의도 받아야 하지만, 9·19 남북군사합의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은 국회 비준을 받지 않아 효력 정지에 국회 동의가 필수는 아니다.

국회 비준 동의를 거친 남북합의서는 김대중 정부 당시의 '남북사이의 투자보장에 관한 합의서' 등 8건과 노무현 정부 때 체결된 '남북상사중재위원회 구성·운영에 관한 합의서'를 비롯한 5건 등 모두 13건으로 전체의 5% 수준이다.

여권 일각에선 북한이 7차 핵실험을 감행할 경우 9·19 남북군사합의는 물론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까지 파기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남북관계 주무부처인 통일부는 "정부는 기본적으로 남북 간의 모든 합의를 존중하고 이행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남북 간에는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이 체결된 것을 비롯해 지난 50년간 680여 회에 달하는 남북간 회담을 거쳐 체결된 합의서만 260개에 육박한다.

이 가운데 시대와 남북관계가 변해 사문화된 합의서도 적지 않지만 우리 정부가 먼저 나서 파기나 무효를 선언한 경우는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가들도 남북 합의서는 남북이 모두 이행한다는 전제 속에 체결된 것이라며 먼저 무효를 선언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총장은 "먼저 폐기한다는 것은 법률적으로도 안 되지만 남북관계 발전에도 큰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