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빈 살만의 몽니
아랍인들의 이름은 ①본인 이름 ②선대 이름 ③가문 이름 등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우리가 ‘빈 살만’이라고 부르는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의 이름은 사실은 ‘무함마드 빈 살만 빈 압둘 아지즈 알 사우드’다. 즉, 본인 이름은 무함마드이고 살만의 아들이며, 아버지 살만은 압둘 아지즈의 아들이고 사우드 가문이라는 뜻이다. 이름에서 알(al)은 가문, 빈(bin)은 ‘~의 아들’을 의미한다. 이름만 보면 가문과 족보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빈 살만은 2016년 왕세자로 책봉된 뒤 최근 총리직에도 오른 명실공히 사우디 최고의 실세다. 6000명에 달하는 사우디 왕자 중 ‘원 톱’이고, 석유에서 나오는 천문학적인 부(富)와 전 세계 15억 이슬람 인구 중 다수(85%)인 수니파의 종주국 리더 지위가 보장돼 있다. 그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31세라는 어린 나이에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스스로 쟁취하고, 정적은 물론이고 비판자들까지 무자비하게 숙청한 ‘냉혈한’이라는 비판이 있다. 그러나 집권 후엔 원전과 인공지능, 네옴 신도시 등에 1000조원이 넘는 돈을 투자하며 ‘석유 이후’ 사우디를 그리는 비전 있는 리더라는 평가도 많다.

23개 산유국 협의체인 OPEC+가 그제 하루 200만 배럴 감산에 합의하면서 빈 살만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외신들은 그가 주도하는 OPEC+가 감산 카드로 미국을 코너로 몰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인플레 압력을 가중시켜 중간선거를 앞둔 조 바이든 정부를 의도적으로 곤경에 빠뜨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통적 맹방인 사우디와 미국은 빈 살만 집권 후 삐걱거리고 있다. 빈 살만은 권력 투쟁 과정에서 자신의 정적을 지원하고, 집권 후에도 카슈끄지 살해사건 등을 이유로 자신을 국제적으로 비난해 온 미 민주당 정권에 대립각을 세워왔다. 러시아 제재 국면에서도 노골적으로 러시아 편을 들었다. 사우디의 감산 몽니에 미국뿐 아니라 세계 경제에 주름살이 늘어날 판이다.

그러나 한국은 이런 사우디를 대놓고 비판할 처지가 아니다. 사우디는 석유 수입의 30%를 공급하는 한국의 주요 교역 대상국(4위)이다. 빈 살만의 11월 방한 때는 원전과 방산, 건설, 인공지능 분야 등에서 대규모 협력도 예고돼 있다.

박수진 논설위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