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사의 직무에 관한 채권은 10년 동안 유효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공공성과 윤리성이 요구되는 세무사에 대해 상법상 ‘상인’에게 보장되는 5년의 소멸시효를 적용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풀빌라 소유주 A씨가 “세무사 B씨의 용역비 강제 집행을 막아달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수원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25일 밝혔다.

A씨는 지인인 호텔업주 C씨의 제안으로 관광지 풀빌라를 사들여 2014년부터 C씨에게 빌려줬다. C씨는 A씨 명의로 사업자 등록을 하고 풀빌라를 운영하며 A씨에게 임차료를 줬다. A씨에게 받은 공인인증서 등을 이용해 A씨 대신 풀빌라 관련 세금 신고 업무도 했다. 세무사 B씨는 C씨의 위임을 받아 2015∼2017년 A씨의 풀빌라 세금 신고를 담당했다. 이후 B씨는 A씨에게 세무 대리 용역비를 청구했다. 429만원을 받아낼 수 있다는 법원 명령도 받았다. 이에 A씨는 “용역비를 강제로 집행해선 안 된다”며 2020년 소송을 제기했다.

1·2심 판단은 엇갈렸다. 1심은 A씨가 세무사 B씨와 세무 대리 계약을 체결했다고 볼 수 없으므로 용역비를 줄 수 없다고 했다. 반면 2심은 두 사람 사이에 세무 대리 계약이 체결됐다고 판단했다. 다만 2심은 ‘변호사·변리사·공증인·공인회계사·법무사의 직무에 관한 채권’이 3년 후 소멸한다고 정한 민법 163조를 유추 적용해 A씨는 청구액 429만원 중 44만원만 B씨에게 주면 된다고 판결했다.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세무사의 직무 대가에 대해 3년의 단기 소멸시효가 아니라 10년의 일반 소멸시효를 적용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상법상 ‘상인’에게 보장되는 5년의 소멸시효도 적용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그러면서 2심까지 지급 의무가 없다고 본 385만원까지 A씨가 B씨에게 줘야 한다고 했다.

대법원은 “고도의 공공성과 윤리성을 강조하고 있는 세무사법의 규정에 비춰보면 세무사의 활동은 상인의 영업활동과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며 “세무사를 상법상 상인이라고 볼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세무사의 직무에 관한 채권은 민법 162조에 따라 10년의 소멸시효가 적용된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올해 5월 “고도의 공공성과 윤리성이 요구된다”며 의사 역시 상법상 상인으로 볼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바 있다. 대법원은 또 2007~2008년 변호사와 법무사에 대해서도 비슷한 판결을 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이들 전문자격사의 채권 소멸시효를 3년으로 규정한 민법 163조를 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