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장례식과 유엔총회 참석 등을 위해 영국 미국 캐나다를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의 정상외교 나들이는 여러모로 순탄치 않았다. 영국에서는 복잡한 현지 사정 때문에 조문 일정이 취소돼 장례식에만 참석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의 한·일 정상회담은 ‘약식회담’(한국)이냐 ‘간담’(일본)이냐의 논란 속에 만남의 물꼬를 튼 것으로 만족해야 했고, 한·미 정상회담은 48초간의 ‘스탠딩 환담’에 그쳤다.

특히 뉴욕의 한 빌딩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만나고 나오던 윤 대통령의 비속어 발언이 TV 카메라에 포착돼 대통령실은 그야말로 해명에 진땀을 흘리고 있다. 비속어의 대상이 한국 국회냐 미국 의회냐, ‘바이든’이냐 ‘날리면’이냐의 논란을 낳았다. 당초 다수 매체는 윤 대통령이 미국 의회를 향해 비속어를 썼다고 보도했으나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1억달러를 글로벌펀드에 공여하기로 한 데 대해 거대 야당이 승인해주지 않고 날리면 나라의 체면이 서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를 함께 이동 중이던 박진 외교부 장관에게 전달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영상을 보면 소음에 뒤섞인 윤 대통령의 말이 확실치 않지만 맥락상 ‘바이든’이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건 어색하다. 윤 대통령이 미국 의회 통과 여부를 걱정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바로 옆에 있던 박 장관도 “상식적으로 대통령께서 미국을 비난할 이유가 있겠나”라고 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대통령이 야당을 향해 비속어를 쓴 것은 분명 잘못이다. 따라서 억지스러운 해명보다는 진솔하게 사과하고 넘어가는 것이 정도다.

야당의 과잉 대응도 문제다. 한마디 말실수를 빌미로 국익을 위해 외교의 최전선에서 분투 중인 대통령을 ‘외교 참사’ ‘막말 외교’ 등으로 몰아붙이는 건 지나치다. 마치 실수하기를 기다렸다는 듯 총공세를 펴는 모양새다. 윤 대통령이 미국 의회를 욕하고 한·미 동맹에 균열이 생기는 게 국익에 도움이 될 리 만무하다. 더불어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조문 외교를 하러 가서 조문하지 않았다고 비난하고, 2년9개월 만에 성사된 한·일 정상회담에 대해선 ‘굴욕외교’ ‘빈손외교’라고 깎아내렸다. 어렵게 물꼬를 튼 한·일 관계를 어떻게 개선해 나갈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비롯한 한·미 간 현안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 국익 차원에서 지혜와 힘을 모으는 게 공당의 자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