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군이 북부에서 러시아군을 몰아붙이며 탈환 속도를 끌어올리고 있다. 제2의 도시인 하르키우를 중심으로 수복 면적을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군이 반격을 위한 전환점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잇따른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2일(현지시간) 화상 연설에서 “9월 들어 오늘(12일)까지 우크라이나군이 남부와 동부에서 6000㎢ 이상 수복했다”며 “우크라이나 군의 진격은 계속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우크라이나군이 탈환한 면적은 서울(605㎢)에 10배에 달한다.

우크라이나군의 진격 속도가 가빠졌다. 이날 AP통신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군은 24시간 동안 20여개 마을을 수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레흐 시네후보우 하르키우 주지사는 “일부 지역에서는 우리 군이 러시아 국경까지 도달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러시아군도 철수를 인정했다. 다만 후퇴는 부정했다. 우크라이나 동부 루한스크와 도네츠크 지역에 화력을 집중하려 군 재편성을 위해 철수했다는 해명이다. 미 국방 싱크탱크인 미국전쟁연구소(ISW)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북부에서 전차 등 각종 군수품을 남겨둔 채 패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군은 지난 5개월간 점령했던 지역을 일주일 만에 빼앗겼다. 러시아는 지난 4월부터 동부 지역(돈바스)에서 서쪽으로 천천히 전진해왔다. 군사력 분석업체 로찬 컨설팅의 콘라드 무지카 대표는 “러시아군이 하르키우를 방어하기엔 동부 지역에 있는 병력이 너무 적었다”라며 “이 때문에 전선 전체가 허물어졌다”고 분석했다.

후퇴한 러시아군은 루한스크주에서 전열을 재정비할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군이 루한스크 인근 도시인 이지움을 어떻게 활용하는 지가 앞으로의 전세에 영향을 줄 거란 전망이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이지움을 우크라이나가 점령하게 되면 키이우로부터 보급받는 수송 경로가 갖춰지게 된다”고 분석했다.

잇따른 승전에도 불구하고 신중론이 제기됐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은 “우크라이나군이 동북부 지역에서 상당한 전진을 이뤄냈지만, 정확히 판세가 달라졌다고 확정하긴 이르다”라며 “러시아군은 여전히 우크라이나 내부에서 군 병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에도 난제가 나타났다. 전력을 한 곳에 집중한 덕에 성과를 냈지만 장기전으로 치달으면 보급 문제가 발생할 거란 지적이다. 존 블락스랜드 호주국립대 보안학과 교수는 “보급선이 확장해 연료, 병력 등에 수급 문제가 빚어지게 되면 우크라이나 전력이 약화할 수 있다”며 “다만 러시아군이 사기가 떨어져서 즉각적인 반격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황에 불확실성이 남아있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비롯한 서방국가의 지원이 증대될 전망이다. 미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미국과 우방국들은 우크라이나에 전투기 등 중장비를 장기적으로 지원해도 되는지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 내부에선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잇따른 패전으로 인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 대한 불만이 증폭돼서다. NYT는 이날 러시아 지방 의원 40여명이 푸틴 대통령의 사임을 촉구하는 연판장에 서명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경제가 악화하고 있어서다. FT는 러시아 정부의 재정수지가 올해 8월 59억달러 규모의 적자를 기록할 거라고 보도했다. 올해 1~7월에는 80억달러 흑자를 기록해왔다. 유럽에 연결된 가스관인 노르드스트림-1을 폐쇄하며 가스 인도량이 이전에 비해 20%로 축소된 탓이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이같은 상황에 대해 “수출감소로 경제가 악화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