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5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전 거래일 대비 8원80전 오른 1371원40전에 마감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4월 1일(1379원40전) 후 최고치다. 이날 서울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원·달러 환율이 표시돼 있다. 김범준 기자
원·달러 환율이 5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전 거래일 대비 8원80전 오른 1371원40전에 마감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4월 1일(1379원40전) 후 최고치다. 이날 서울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원·달러 환율이 표시돼 있다. 김범준 기자
원·달러 환율이 연일 연중 최고점을 갈아치우고 있다. 특히 달러 강세에 위안화 약세가 더해지면서 환율 상승 속도가 가팔라지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강(强)달러와 약(弱)위안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면서 원화 가치가 내년 상반기까지 약세 기조를 이어갈 것이란 전망도 있다. 여기에 무역적자, 에너지 가격 급등, 외환보유액 감소 등이 겹치면서 외환시장 주변엔 온통 환율 상승을 부추기는 ‘악재’만 부각되는 모습이다.

환율, 한때 1375원 찍어

强달러-弱위안에 낀 '샌드위치' 원화…1400원도 돌파하나
5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2원40전 오른 1365원에 거래를 시작한 뒤 두 시간여 만인 오전 11시20분께 장중 1370원을 돌파했다. 외환당국 개입으로 추정되는 물량과 수출 기업의 매도 등이 나오면서 장 초반 1361원70전까지 내렸지만 급등세를 막지 못했다. 지난 1일 1354원90전, 2일 1362원60전에 이어 5일까지 거래일 기준 3일 연속 연중 최고치를 경신했다.

원·달러 환율 상승 속도는 최근 더 빨라지고 있다. 7월 15일 1320원대를 넘어선 환율은 한 달여 만인 8월 22일(1339원80전)에야 1330원대를 기록했다. 이후 하루 만에 1340원대를 넘어선 데 이어 8월 29일(1350원40전)에는 5거래일 만에 1350원대로 진입했다. 원·달러 환율이 1360원대로 뛴 건 4거래일 만인 지난 2일(1362원60전)이다.

미국·중국 악재 동시 작용

달러화와 위안화발(發) 동반 악재가 원화 약세 압력을 키우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 2일 미국의 8월 비농업 신규 고용이 31만5000명으로 시장 예상치(29만8000명)를 웃돈 것으로 나타나면서 미국 중앙은행(Fed)의 3연속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를 한 번에 0.75%포인트 인상) 가능성에 힘이 실렸다. 지난달 미국 실업률은 3.7%로, 전월 대비 0.2%포인트 상승했다. 민경원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실업률 소폭 증가는 경제활동 참가율이 상승한 영향으로 풀이됐다”며 “시간당 임금 상승률이 0.3% 증가에 그치면서 임금 상승으로 인한 물가 상승 압력이 진정될 것이란 낙관적인 해석도 제기됐다”고 전했다. 미국 경제가 기준금리 인상에도 연착륙할 것이란 신호로 읽혔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는 20여 년 만에 처음으로 110선을 돌파했다.

반면 중국 경기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위안화는 약세였다. 달러당 위안화는 7위안을 넘보고 있다. 2020년 8월 후 최고치다. 위안화 약세는 코로나19에 따른 도시 봉쇄, 부동산 침체, 60년 만의 폭염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지난 3월 중국 최대 경제도시인 상하이 봉쇄 쇼크가 가시기 전에 최근 청두가 봉쇄된 데 이어 중국 3위 경제 도시 선전이 사실상 전면 봉쇄에 들어갔다. 청두와 선전은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4%를 차지한다.

중국의 부동산 경기가 장기 침체에 들어갔다는 분석과 함께 1961년 기상 관측 이후 최악의 폭염이 지속되고 있는 것도 중국 경제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요인이다. 한국은행은 최근 위안화 약세와 관련, “폭염이 6월부터 지속되면서 전력난이 가중되고 제조업체들의 조업 중단이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외환보유액 감소세

달러 강세 영향으로 외환보유액도 한 달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지난달 외환보유액은 전달보다 21억8000만달러 줄어든 4364억3000만달러로 집계됐다. 올 들어 267억달러 줄었다.

올 하반기 유럽발 가스대란이 현실화되면 원화 약세는 더 가속화할 수 있다. 시장에선 내년 상반기까지 원화 약세가 이어지면서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최근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과 중국 등 글로벌 수요 둔화 등으로 무역수지가 악화하면서 향후 경상수지 흑자 축소 가능성이 있다”며 “(다만) 높아진 환율 수준과 달리 대외건전성 지표들은 큰 변화 없이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상수지와 내외국인 자본 흐름 등 외환 수급 여건 전반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정책 방안 등도 지속해서 모색하겠다”며 “시장 교란 행위에 대해선 적기에 엄정히 대응해 나가겠다”고 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