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출범 3개월 후(後)가 아니라 차기 대선 3개월 전(前)을 보는 것 같다. 현직 대통령의 지지율은 바닥이고, 사실상 당권을 장악한 야당의 잠재적 대선 후보는 마치 자신이 다음 대통령이라도 된 듯 목소리가 크다.

국정 난맥상의 원인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윤석열 정부는 태생적으로 여론에 취약하다. 박근혜 탄핵, 문재인 정부를 거치며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했다. 국민 통합은커녕 국민 분열이 상수인 시대다. 더군다나 정치인 경력이 1년 남짓한 윤석열 대통령은 다듬어지지 않은 언행으로 반복해서 점수를 잃었다. 둘째, 대선 이후 정부는 ‘이중권력’ 상태다. 대통령제에서는 국민이 행정부 수반과 국회의원을 따로 선출하다 보니, 여소야대가 되면 “누가 국민의 대표인가”를 두고 대통령과 국회 다수당이 충돌할 수밖에 없다. 국회 의석의 60%를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은 대선 직후 당선자의 공약과 정면충돌하는 ‘검수완박’을 밀어붙였을 뿐만 아니라 새 정부 출범 이후 원 구성을 지연시켜 50일 가까이 국회를 멈춰 세웠다. 새 대통령에 대한 일종의 보이콧이었다.

마지막으로 이것이 가장 중요한데, 윤 대통령의 ‘테크노크라시(전문가·관료 주도의 정부)’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포퓰리즘(대중을 선동하고, 여론에 영합하는 정치)’을 선호하는 국민이 더 많기 때문이다. 최근 여론조사가 보여주듯, 전·현직 대통령을 상대로 인기 투표를 하면 전직 대통령이 앞선다.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포퓰리즘에 호의적인 유권자가 더 많다. 전통적인 좌·우 이념, 과학적으로 검증된 정책은 인기가 없다. 안타깝지만 이것이 정치의 객관적 조건이다.

이런 난맥상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솔직히 사면초가다. 윤 대통령의 정치 감각이 단기간에 획기적으로 개선될 리 없고, 총선 전에 다수당이 약화할 리도 없다. 여론에 영합하기 위해 포퓰리스트 흉내를 낼 수도 없다. 오히려 윤 대통령의 소임은 포퓰리즘 유산을 청산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반(反)-포퓰리즘은 구망(救亡·풍전등화인 나라를 구하는 일)과 같다. 팬데믹 이후의 경제적 혼란, 격변하는 세계 질서에서 길을 잃은 외교, 무장한 경찰이 집단행동에 나설 정도로 붕괴한 형사사법을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하다. 여러 정책 중 한두 개가 실패한 게 아니다. 경제, 안보, 법치라는 정부의 골간이 흔들린 것이다. 이대로 두면 정부 자체가 실패한다. 원인은 세계정세의 변화도 있지만, 8할이 문 정부의 포퓰리즘 정책이다.

상상해보자. 이재명 의원이 당선돼 여론에 편승하기 위해 소득주도성장과 같은 비과학적 경제정책을 다시금 밀어붙였다면, 정적(政敵)을 잡겠다고 토착 왜구 척결 같은 위험천만한 민족주의 캠페인을 또 조직했다면, 집권 세력의 안전을 위해 무소불위 경찰을 휘하에 뒀다면, 과연 어떤 일이 발생했겠는가? 정부가 경제, 외교, 법치에서 통제력을 상실했을 것이다. 20세기 말 남미 여러 나라가 실제로 이런 식으로 무너졌다. 구망의 절박함은 과장이 아니다.

현대 중국의 대표적 사상가인 리쩌허우(李澤厚)는 진정한 구망을 위해서는 반드시 계몽(啓蒙)이 수반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민이 어떤 보편적 가치를 공유해야 하는지, 어떤 선진적 제도를 수립해야 하는지 깨닫지 못하면 나라를 구할 수 없을뿐더러, 설령 구한다 해도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지 못한다.

윤 정부는 경제에서 민간과 정부의 적절한 역할이 무엇인지, 동아시아 국제질서에서 ‘민주주의 동맹’ 강화가 국익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검경 수사권 재조정과 경찰 통제가 법치에 왜 중요한지 등을 국민에게 차분하게 설명해야 한다. 추진력보다 더 절실한 것은 설득력이다. 지지율도 정확히 국민을 얼마나 설득하느냐에 비례할 것이다. 2024년 총선까지 윤 정부에 뒤는 낭떠러지고 앞은 외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