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부도 사태 속에 반정부 시위대에 쫓겨 싱가포르로 도피한 고타바야 라자팍사(73) 스리랑카 전 대통령이 귀국할 예정이라고 스리랑카 정부 관계자가 밝혔다.

26일(현지시간) 영국 BBC 등 외신에 따르면 반둘라 구나와르데나 내각 대변인은 이날 취재진에게 라자팍사 전 대통령이 스리랑카로 돌아올 것으로 보이며 귀국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라자팍사 전 대통령은 싱가포르에 숨은 것도 망명한 것도 아니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한 익명의 관계자도 블룸버그를 통해 “라자팍사 전 대통령이 수도 콜롬보로 돌아가고 싶어한다”고 전했다.

라자팍사 전 대통령은 지난 9일 반정부 시위대가 대통령 집무실 등을 덮치자 군용기를 타고 급히 해외로 출국했다. 몰디브를 거쳐 14일 싱가포르에 도착한 직후 이메일로 사임서를 제출했으며 15일 스리랑카 의회에서 공식 수리됐다.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아라비아 망명 등 라자팍사 전 대통령에 대해 수많은 추측이 나돌았지만 최근 싱가포르 현지 언론에 따르면 라자팍사 전 대통령은 정치적 망명을 요청하지 않았고 개인 자격으로 14일 비자를 받은 뒤 14일 더 연장했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라자팍사 전 대통령이 해외에서 전범 혐의로 체포될 가능성을 우려해 귀국을 서두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라자팍사 전 대통령은 대통령에서 물러난 직후 인권단체 ‘국제 진실과 정의 프로젝트(ITJP)’는 그의 과거 전범 혐의를 거론하며 싱가포르 법무부에 형사 고발했다. ITJP는 “라자팍사 전 대통령이 2009년 국방차관 재임 시절 제네바협약 위반 혐의에 대해 수사해 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불교도 주축인 정부와 힌두교 주축인 타밀족 반군간 내전 중 정부군이 4만5000여명 타밀족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스리랑카에서는 수십 년 만에 최악의 경제 위기를 촉발한 정부를 비난하는 시위가 끊이질 않고 있다. 지난 5월 공식적인 채무불이행(디폴트) 상태로 접어든 가운데 수개월 동안 매일 정전과 연료 식품 의약품 등 필수 수입품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라자팍사 전 대통령 측근이자 라닐 위크레마싱헤가 새 대통령으로 교체됐지만 당분간 정국 혼란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조영선 기자 cho0s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