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軍 은폐·허위 수사 드러나…국방장관에 '순직' 등 명예회복 요청

폭언·질책 원인인데도 지병으로 은폐…군사망규명위 30건 규명
신병 비관으로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군이 종결 처리한 당시 한 병사의 사망 원인이 직속상관의 반복된 폭언과 질책 때문으로 40년 만에 밝혀졌다.

또 군 수사에서 암을 비관해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처리된 한 부사관도 가혹행위가 그 원인으로 드러났다.

대통령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송기춘, 이하 군사망규명위)는 25일 제53차 정기회의를 열어 진상을 규명한 30건을 포함해 진정 41건을 종결했다고 26일 발표했다.

군사망규명위는 고(故) 이모 이병 사건 등 일부를 익명으로 공개했다.

1982년 당시 군은 이 이병이 평소 지병으로 군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고, 공수교육을 앞두고 공포감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했다.

그러나 조사 결과 이 이병이 사망 전 전입한 부대는 전 대원 공수기본훈련 등으로 군수품 분실이 잦았고, 적절한 인수인계 없이 보급서기병으로 근무하며 직무수행에 큰 스트레스를 겪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이병은 직속상관인 중대장으로부터 업무 미숙을 이유로 지속해서 폭언과 질책을 받던 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헌병대는 수사 과정에서 전우들로부터 이런 정황 진술을 듣고도 묵살한 채 개인 처지를 비관해 자해했다는 허위 사실을 기재하는 등 사건을 은폐했다.

또 1972년 4월 숨진 고 최모 일병도 군사망규명위 조사에서 군 수사기관의 은폐 정황이 드러났다.

군은 최 일병이 연인의 임신 사실과 가정 형편을 비관하다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수사 결과를 보고했다.

그러나 이번 조사에서 연애편지나 주변인 진술 등 연인관계를 입증하는 어떠한 증거도 확인되지 않았고, 생활환경이 곤궁하지도 않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오히려 소속 부대는 단체 기합, 한여름 방한복 차림으로 원산폭격 등 가혹행위와 '왕따' 괴롭힘 등 부조리가 만연했던 사실을 확인하고 이런 부조리로 최 일병이 죽음에 이르렀다고 결론내렸다.

군사망규명위는 이 이병과 최 일병의 명예회복을 위한 조처를 국방부 장관에 요청했다.

폭언·질책 원인인데도 지병으로 은폐…군사망규명위 30건 규명
아울러 2004년 12월 숨진 최모 이병에 대해서도 특수전사령부 보통검찰부는 뇌막염, 디스크, 키쿠치 임파선염, 우울증 등 지병을 비관해 자해 사망한 것으로 처리했다.

그러나 조사 결과 고인이 앓았다는 각종 지병은 입대 전 치료를 거쳐 복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정도였거나 복무 중에 발병한 것이었다.

고인은 특전사로 차출된 후 심리적 부담감과 두려움으로 우울증이 발병한 가운데 선임병으로부터 암기 강요와 '갈굼'을 당하며 우울증이 악화해 결국 숨졌다.

군사망규명위는 최 이병이 복무가 원인이 돼 사망했음에도 국가가 유족에게 충분한 설명과 보상의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고 평가하고, 국방부 장관에게 '순직'으로 재심사하고 유족의 명예회복을 위한 국가적 책임을 다하라고 주문했다.

이밖에 1989년 숨진 공군 A 부사관과 1987년 사망한 신병 B씨 사건에 대해서도 군사망규명위는 병영 부조리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군은 A 부사관이 위암을 비관해 숨졌다고 사건을 종결했으나 군사망규명위 조사에서 이를 뒷받침하는 의무기록을 찾을 수 없었고 해당 부대에서 기수문화에 의한 기합형태의 구타 가혹행위가 일상적으로 행해진 사실을 확인했다.

B 신병에 대해 군은 불우한 가정환경과 허약한 체질을 비관해 자해로 숨진 것으로 사건을 종결했지만 B 신병이 자대 배치를 받은 직후부터 태권도 훈련을 빙자한 가혹행위를 받아 고통을 견디기 어려워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고인이 관심사병으로 지정됐으나 체계적 관리를 받지 못하고 자대 배치 후 불과 1주일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편 군사망규명위는 접수한 진정 1천787건 가운데 1천236건을 종결했으며 551건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