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주식시장이 침체된 가운데 채권편입 비중이 높은 '채권혼합형 펀드'가 일부 대형 운용사를 중심으로 다시 등장하고 있다. 하락장 손실 기피 성향이 높은 보수적 투자자들을 잡겠다는 의도다. 퇴직연금에 100% 투자할 수 있다는 점도 손꼽히는 이점 중 하나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최근 ETF 시장이 과열되면서 백화점식 상품 내놓기에만 급급한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13일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한국투자신탁운용은 이달 S&P500 주식과 미국 채권에 각각 3대 7 비중으로 분산 투자하는 'KINDEX 미국S&P500채권혼합액티브' ETF를 출시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금융감독원의 심사를 받고 있다.

한국투자신탁운용 관계자는 "매크로 악재로 인해 패닉장이 이어지고 있지만 S&P500 지수는 중장기 관점에서 꾸준히 성장할 것"이라며 "유망하고 우량한 주식들을 같이 담는 만큼 기존의 채권혼합형 ETF 대비 높은 성장성을 기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상장 땐 S&P500에 투자하는 국내 첫 채권혼합형 ETF가 될 전망이다. 미 증시 대표지수에 투자하는 채권혼합형 ETF로는 두 번째다. 첫 사례는 미래에셋자산운용이 만들었다. 지난 6일 미래에셋자산운용은 기술 우량주 지수인 나스닥100 주식과 우리나라 국채에 분산 투자하는 'TIGER 미국나스닥100TR채권혼합Fn'을 상장한 바 있다.

이 나스닥100 채권혼합 ETF의 비교지수는 'FnGuide 나스닥100 채권혼합 지수'다. '나스닥100 토탈리턴 지수'와 'KIS 국채3-10년 총수익지수' 일간 수익률을 혼합해 산출한다. 이 지수는 나스닥100, 코스피 등과 비교할 때 변동성 대비 수익률이 우수하고 고점 대비 최대 낙폭이 낮다는 게 사측 설명이다.
한국투자신탁운용. 사진=한경DB
한국투자신탁운용. 사진=한경DB
한국투자신탁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 등 두 운용사 상품은 글로벌 주식과 채권 두 종류의 자산에 투자한다는 공통점을 갖지만 채권 발행국과 운용 성격 등에서 차이가 있다. 국내 채권을 담는 미래에셋자산운용과 달리 한국투자신탁운용은 미국 채권을 편입하고 '액티브'하게 운용한다. 액티브 ETF는 패시브 ETF와 다르게 펀드매니저가 구성종목 일부를 바꿔가면서 벤치마크 지수 대비 초과 수익을 추구한다.

한편 채권혼합 붐은 펀드로도 번진 모양새다. 지난달 7일 교보악사자산운용은 국내 빅테크와 국내 채권에 함께 투자하는 '교보악사플랫폼투게더 채권혼합 펀드'를 출시했다. 펀드는 대표 플랫폼 기업인 네이버와 카카오 주식에 20% 안팎의 비중으로 투자하고 기타 플랫폼·콘텐츠 관련 시가총액 상위 기업과 유망한 중소형주 플랫폼사에 남은 비중을 할애한다. 펀드의 주식투자 비중은 전체 50% 미만이고 나머지는 평균 신용등급 AA-이상의 국내 채권에 투자한다.

자산운용사들이 채권혼합형에 하나둘씩 내놓는 것은 변동성 높은 증시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금리 인상과 경기 침체 우려로 증시 변동성이 커지면서 위험자산인 주식에 대한 투자심리가 요동치는 상황이다. 전일 기준 코스피지수는 올 들어서만 22% 넘게 밀렸다. 성장주를 선별해 투자하면서도 국내 채권을 같이 담아 자산가격의 변동성을 낮추는 상품이 투자자들에게 통할 것이라고 본 것이다. 채권으로의 유입은 투자자별 거래 통계에서도 나타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12일까지 장외 채권시장에서 개인투자자는 채권을 5조8831억원어치 순매수했다.

아울러 퇴직연금(DC·IRP형) 운용에 효율적인 점도 큰 강점이다. 우리나라는 퇴직연금의 안정성 확보를 위해 위험자산의 투자한도를 70%로 한정하고 있고 나머지 30%는 안전자산으로 채우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운용사들이 일정 비중을 주식에 투자하면서도 비위험자산으로 분류되는 '채권혼합형 펀드·ETF'에 주목한 것도 이 때문이다.

안정적인 성향의 투자자라면 퇴직연금 계좌 전체(100%)를 채권혼합 ETF에 투자할 수 있다. 적극적인 투자를 원할 경우에는 미 대표지수 추종 ETF를 70% 담고 채권혼합형 ETF를 30% 비중으로 담으면 된다. 아울러 채권혼합형 ETF를 활용하면 위험자산 비중을 기존 70%에서 더 올릴 수 있게 된다. 미래에셋자산운용 한 관계자는 "채권혼합형 ETF에 위험자산 투자한도 외 30% 비중을 할애하면 단순 계산 시 전체 위험자산 비중을 80% 수준까지는 올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낙관만 하기엔 시장 분위기가 어수선해 보인다. 투자자 수요가 클지를 두고 회의적인 관측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한 운용사 임원은 "투자자들은 이미 포트폴리오 내 주식과 채권 등 자산배분을 하고 있는데, 굳이 채권혼합형 ETF에 투자할 이유가 많지 않다. 이도저도 아닌 투자가 될 가능성이 큰 셈"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표면적으로는 '디폴트옵션용' 상품으로 명명했지만 실제로는 채혼(채권혼합) 상품의 영역을 차지하려는 유인이 클 것"이라며 "레버리지와 인버스는 삼성자산운용의 코덱스, 중국 전기차 테마는 미래에셋자산운용의 타이거가 바로 떠오르듯 상징적인 영역을 갖기 위해 운용사들끼리 선점 경쟁을 벌이는 것이다. 해당 영역을 선점할 수는 있어도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지는 의문"이라고 밝혔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