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나 공휴일에도 약국 앞에 설치된 자동판매기에서 긴급하게 약을 살 수 있는 새로운 서비스 도입이 약사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엊그제 정부의 규제 샌드박스 심의를 통과한 ‘일반의약품 스마트 화상판매기’ 사업에 대해 대한약사회가 반대 성명을 내고 전면 투쟁을 선언한 것이다.

화상판매기는 한 스타트업(쓰리알코리아)이 개발한 것으로 ‘의약품 원격구매’를 가능하게 해주는 기기다. 환자는 이 판매기를 통해 약사와 실시간 상담하고 복약지도를 받을 수 있어 의약품 접근성이 크게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약사회는 ‘약국이 아닌 장소에서 약사의 약품 판매를 금지한다’는 약사법 조항을 문장 그대로 해석해 불법이라고 주장한다. 또 정부의 ‘약사 말살 정책’이라며 단 한 곳의 약국에도 화상판매기가 설치되지 않도록 행동으로 저지하겠다고 맞섰다. 기기 개발 10년 만에 샌드박스를 통해 힘겹게 시범사업 기회를 잡은 스타트업으로선 또 하나의 거대한 장벽에 맞닥뜨린 셈이다.

약사회는 결사반대 이유로 대면 원칙 훼손, 오·투약 부작용 증가, 민감 개인정보 유출, 지역 약국 시스템 붕괴 등을 들었지만 어느 것도 공감하기 힘들다. 대부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에서 비대면 ‘진료’와 ‘처방’까지 허용하는 판에 위험이 훨씬 낮은 ‘판매’를 두고 대면을 고집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또 자판기를 설치한 해당 약국의 약사로부터 직접 복약지도를 받는 만큼 과도한 오·투약 우려도 불필요하다. ‘지역약국 시스템 붕괴’를 거론하는 것은 ‘소비자 편의’를 희생해 철밥통을 유지하는 직역 이기주의에 가깝다.

약사회는 ‘국민건강을 지키는 소임에 충실하겠다’는 명분을 앞세우지만 ‘기득권 지키기’라는 비판이 불가피하다. 편의점에서 해열제 위장약 등 상비의약품 13종을 팔기 시작한 게 벌써 10년째다. 처방약도 아닌 일반의약품을 ‘라이브’ 상담으로 판매하는 데 따른 위험은 얼마든지 통제 가능하다. 지금은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 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헬스케어 산업의 선도력을 키워야 할 시기다. 규제장벽에 안주해 혁신을 외면한다면 변화하는 세상의 주역이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