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테슬라와 삼성전자…성장주인가, 가치주인가
우리에게 ‘돈나무 언니’로 잘 알려진 캐시 우드가 “5년 뒤 테슬라는 성장주에서 가치주로 변할 것”이라고 발언한 것을 계기로 성장주와 가치주 간의 논쟁이 재가열되고 있다. 우드는 테슬라가 지금은 성장주로 분류되고 있지만 앞으로 5년 동안 기업실적이 뒤따라오면서 주가가 5800달러까지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잊을 만하면 월가와 국내 증시를 중심으로 가치주와 성장주 간 논쟁이 되풀이되는 것은 균형이론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균형이론은 시장경제가 잘 작동해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는 가격(주가)이 가치주는 저평가된 현재 가치에, 성장주는 높게 평가되는 미래잠재가치에 수렴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지만 이를 채워줄 수 있는 자원은 유한하다.’ 경제학 원론을 열면 처음 접하는 이른바 ‘자원의 희소성 법칙’이다. 이 문제를 가장 간단하고 이상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시장 신호에 의한 방법이다. 특정 재화에 대한 욕망이 높은 시장참가자는 높은 가격을 써낼 의향이 있고, 그 신호대로 해당 재화를 배분하면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가장 간단하기 때문에 복잡하고, 가장 이상적이기 때문에 달성하기가 힘들다. 완전경쟁은 아니더라도 시장경제가 잘 작동되기 위해서는 공급자와 수요자가 충분히 많아야 하고 제품의 질도 가능한 동질적이어야 한다. 정보의 비대칭성도 크게 차이 나서는 안 된다.

재화 배분에서도 ‘경합성의 원칙’과 ‘배제성의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 경합성이란 특정 재화를 여러 사람이 나눠 쓰면 한 사람의 몫은 줄어드는 것을 뜻한다. 배제성이란 가격을 지급한 시장참가자만이 특정 재화를 소유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이런 전제와 원칙이 무너지면 시장에 맡기는 것이 오히려 더 안 좋은 결과, 즉 ‘시장의 실패’를 초래할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합리적 인간을 가정한 주류 경제학에 대한 회의론이 확산하고 있다. 합리적 인간이라는 가정이 무너진다면 자유와 창의를 바탕으로 한 시장경제에도 변화가 올 수밖에 없다. 시장 실패 부문에 대해 국가가 개입할 수밖에 없는 정당성을 부여해줘서다.

시장에서 인간의 합리성은 갖고자 하는 특정 재화의 가치와 가격으로 나타난다. 가치에 합당한 가격, 즉 돈을 지급하면 ‘합리적’, 그렇지 못하면 ‘비합리적’으로 판단된다. 법정화폐(legal tender) 시대에서는 발권력을 가진 중앙은행이 각종 환상이나 수수께끼 현상이 발생하지 않도록 실물경제 여건에 맞게 법화(돈)를 잘 조절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코로나 사태를 맞아 중앙은행이 돈을 과다하게 공급함에 따라 경제주체들이 ‘화폐 환상(money illusion)’에 빠지면서 제품의 가치와 가격 간 괴리가 심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정 재화에 돈이 너무 많이 몰려 해당 재화의 가치에 비해 가격이 높게 형성되면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인간의 전제가 시장에서는 깨진 것처럼 비친다.

공급 측 참여자도 코로나 사태에 이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겪으면서 이런 상황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수요 측 참여자도 각종 봉쇄 조치와 애국 소비 운동 등으로 마찬가지다. 모든 것이 보이는 증강현실 시대를 맞아 정보 이용에 대칭성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격 결정에 핵심적인 정보일수록 비대칭성이 심해지는 추세다.

디지털화 진전에 따른 네트워킹 효과로 외부성도 강해지고 있다.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개발’에 우선순위를 두는 유토피아 시대에서 ‘보호’에 중시하는 디스토피아 시대로 넘어옴에 따라 외부 불경제(사적 비용<사회적 비용) 현상이 상시화되고 시장경제를 지탱하는 배제성과 경합성의 원칙도 무너지고 있다.

모든 제품은 가치대로 가격이 형성돼야 한다. 그래야 기업인의 창조적 파괴 정신이 고취되고, 소비자의 합리적 소비행위와 투자자의 건전한 투자문화가 정착될 수 있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새롭게 다가오는 시장 여건에 맞게 경제주체의 역할이 조정돼야 시장경제가 재탄생될 수 있다. 그전까지는 증시에서 가치주와 성장주 간 논쟁은 큰 의미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