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노동행위의 주체가 사업주가 아닌 회사 임원이라고 해도 근로자가 노동당국에 구제 신청을 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이와 함께 대법원은 ‘사업주를 위해 행동하는 사용자’가 자신의 권한과 책임 범위 안에서 한 부당노동행위는 사업주의 부당노동행위로 인정할 수 있다는 기준도 제시했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A씨와 전국택시산별노동조합(택시산별노조)이 중앙노동위원장을 상대로 낸 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판정 취소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5일 밝혔다.

재판부에 따르면 전국택시산업노동조합(전국택시노조) 분회장이던 A씨는 2015년 자신이 다니던 택시회에서 기업 단위 노조를 따로 설립했다는 이유로 전국택시노조로부터 제명당했다. 새로 설립한 노조는 이후 택시산별노조에 가입했다. 사측과 장기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온 전국택시노조는 A씨의 활동으로 인해 교섭대표노조 지위를 상실할 상황이 됐다.

얼마 뒤 회사 상무이사인 B씨는 A씨에게 “택시산별노조와 연대하지 말라”는 회유성 발언을 했다. 이에 A씨와 택시산별노조는 이를 “부당노동행위”라고 주장하며 노동당국에 구제 신청을 했다.

하지만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는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B씨는 ‘상무’일 뿐 ‘사업주’가 아니므로 부당노동행위 구제 신청의 상대방이 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A씨와 택시산별노조는 소송을 걸었으나 1심 역시 중노위와 같은 판단을 내놨다.

이 판단은 2심에서 뒤집혔다. 재판부는 “상무이사 역시 ‘회사의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해 사업주를 위해 행동하는 자’이기 때문에 부당노동행위 구제 신청의 상대방이 될 수 있다”며 A씨와 택시산별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B씨의 발언이 부당노동행위라고도 지적했다.

대법원은 2심 판단이 옳다고 봤다. 재판부는 사업주가 아닌 사용자(상무이사 등)도 부당노동행위 구제 신청의 상대방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A씨 외에 노조 역시 문제의 발언으로 권리를 침해받았다면 구제 신청을 할 자격이 있다고 판시했다.

아울러 부당노동행위 구제 신청의 상대방인 ‘사용자’에 사업주, 경영담당자,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서 사업주를 위해 행동하는 사람이 모두 포함된다고 했다. 대법원은 또한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해 사업주를 위해 행동하는 자’가 자신의 권한과 책임 범위 내에서 사업주를 위해 한 행위가 부당노동행위가 되는 경우 이는 사업주의 부당노동행위로도 인정할 수 있다”는 기준을 설정했다.

대법원은 사업주가 업무 수행상 감독에 주의를 다했는데도 부당노동행위가 벌어졌다면 사업주 책임이 면제될 수 있지만 이를 증명할 책임은 사업주 본인에게 있다고도 덧붙였다.

이번 판결에 대해 법조계에선 이와 비슷한 구제 신청이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강세영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기존에는 사업주가 아닌 임원들의 부당노동행위 분쟁에 대해 고소·고발 등 형사절차를 거쳤다”며 “앞으로는 노동위원회 구제 신청이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조상욱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노조에서 사측을 압박할 목적으로 이와 같은 구제신청 카드를 더욱 많이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며 “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당사자와 회사의 법률비용 부담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현아 기자 5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