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일 "해보고 싶은 거 다 해봐…음악은 시간과 기억 이어주는 장치"
'안나라수마나라' 음악감독 "한 곡 100번 넘게 촬영한 적도"
주인공이 마술을 선보이는 장면에서는 신비로운 소리를 내는 하프, 실로폰 등의 악기 소리가 들려오고, 판타지 장면에는 70인조 오케스트라가 만들어낸 풍성한 선율이 흐른다.

넷플릭스 판타지 뮤직 드라마 '안나라수마나라'의 음악을 총괄한 박성일 음악감독은 18일 연합뉴스와 서면으로 한 인터뷰에서 "좋은 작품 안에서 평소 해보고 싶었던 시도를 원 없이 해볼 수 있었다"고 작품을 마친 소감을 밝혔다.

박 감독은 "드라마 음악을 만드는 음악가의 장점은 장르 구분 없이 모든 걸 시도해 볼 수 있다는 것"이라며 "오늘은 오케스트레이션 장르를 만들다가 다음 작품에서 아프리카의 리듬을 사용해도 되는데, 특히 이번 작품에서는 대중적으로 많이 사용하지 않는 음악까지 원 없이 다 구현해본 것 같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미생', '시그널', '나의 아저씨', '이태원 클라쓰' 등 인기 드라마의 음악 작업을 해온 베테랑이지만, '안나라수마나라'의 음악 작업은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자 도전이었다고 했다.

'안나라수마나라'는 꿈을 잃어버린 소녀 윤아이와 꿈을 강요받는 소년 나일등 앞에 어느 날 마술사 리을이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배우들이 연기와 함께 감정을 노래로 전달하는 장면이 있는 음악 드라마로, 음악 작업만 꼬박 18개월이 걸렸다.

극본이 완성되면 작곡을 시작하면서 비주얼 아티스트와 함께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여기에 넣을 안무를 담당하는 안무감독과도 의견을 주고받는 프리 프로덕션 과정을 거쳤다.

각종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배우들의 노래 레슨이 시작됐고, 연습 녹음과 현장 녹음, 보충 녹음이 반복됐다.

'안나라수마나라' 음악감독 "한 곡 100번 넘게 촬영한 적도"
박 감독은 "한국에서 수많은 음악 소재의 영화나 드라마를 시도했지만, 창작곡만으로 중편의 음악 드라마를 만든 사례는 아마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감독은 '음악은 캐릭터의 감정을 전달하는 수단이어야 한다'는 김성윤 감독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다고 했다.

그는 "공연이나 영화와 달리 긴 호흡이 필요한 드라마는 감정의 전달이 흐릿해지는 순간 시청자가 이탈할 수 있다"며 "음악의 역할은 감정 전달을 위한 보조 수단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감독과의 첫 미팅에서 나눈 이야기도 '뮤지컬 영화처럼 접근하지 말자'는 것이었다고 했다.

박 감독은 "배우들이 연기하다가 극적인 감정을 갑자기 뮤지컬 방식의 넘버로 표현하면 자칫 시청자들에게 이질감이 느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래서 선택한 게 꼭 필요한 빠른 넘버들을 판타지 신으로 제한하고 최소화해서 배치한 후 가장 감정이 올라오는 포인트에 감정 음악으로 배치하는 방법이었다"고 설명했다.

마술사 리을과 가난한 현실에 지쳐있는 아이 등 개성이 뚜렷한 인물들이 등장하다 보니, 음악도 캐릭터마다 다른 색깔을 입혔다고 했다.

박 음악감독은 "리을은 시각적 판타지 요소가 많기 때문에 음악도 풀 오케스트레이션으로 큰 사이즈로 가져갔다"며 "반대로 아이는 매우 드라이한 목소리로 덤덤하게 부르는 설정을 하고 작곡을 했고, 소박한 편곡 위에 첼로만 더빙한다거나 하는 형태를 택했다"고 전했다.

'안나라수마나라' 음악감독 "한 곡 100번 넘게 촬영한 적도"
배우들 역시 노래 장면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고 했다.

리을 역의 지창욱은 뮤지컬 무대 경험이 있지만, 윤아이 역의 최성은과 나일등 역의 황인엽은 이제 막 필모그래피를 쌓고 있는 신예 배우다.

박 감독은 처음에는 마치 가수들이 부르는 것처럼 디렉팅하고, 목소리를 다듬는 작업을 했더니 뮤직비디오 같은 느낌이 강했고, 노래를 대사 톤과 비슷하게 맞췄더니 감동이 떨어지는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했다.

그는 "현장에서 촬영하고, 다시 보충 녹음을 하는 식으로 진행을 했는데, 한 곡에 100번 넘는 테이크(시도)가 있었으니 배우들도 마음고생을 많이 했을 것"이라며 "음악은 어쩔 수 없이 물리적인 연습 시간이 필요한데 다들 너무 훌륭하게 잘 따라와 줬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박 감독은 드라마의 결과물에서 스태프들과 고생했던 보람이 충분히 느껴진다고 했다.

특히 보너스 트랙처럼 드라마가 끝난 뒤 나오는 커튼콜 장면에는 모든 스태프가 등장하는데, 이때 흘러나오는 OST '판타지'를 듣고 있자니 뭉클한 감정이 올라왔다고 전했다.

"음악의 힘은 다른 사람들의 시간과 기억을 연결해주는 것이죠. 어릴 때 열심히 듣던 음악은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듣는 순간 그때의 기억을 당장 소환해 주잖아요.

시청자가 작품 안에서 감동을 느끼고 나면 음악과 드라마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돼버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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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라수마나라' 음악감독 "한 곡 100번 넘게 촬영한 적도"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