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아림(27)은 필드 위의 '흥부자'다. 샷이 잘 돼도 웃고, 벙커로 빠져도 웃는다. 퍼트가 들어가면 환호를 보내는 갤러리들에게 '배꼽인사'를 올리며 화답한다. 1일 경기 포천 일동레이크GC(파72)에서 막을 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메이저 대회 크리스F&C KLPGA 챔피언십(총상금 12억원)에서 김아림의 흥이 다시 한번 빛났다. 12번홀(파4)에서 13m 버디퍼트를 성공시킨 김아림은 퍼트를 번쩍 들어올리며 포효했다. 2위와의 격차를 3타차로 벌리며 우승에 쐐기를 박은 순간이다. 김아림의 세러모니에 갤러리들은 대회장이 떠나갈 듯한 함성으로 열기를 더했다. 김아림은 이번 대회 내내 멋진 액션으로 갤러리들을 즐겁게 했다. 1라운드를 마치고 기자들을 만난 김아림은 "날씨도 좋고 한국에 와서 팬들도 만났는데 신나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환하게 웃었다. 대회 기간 내내 팬들의 사인과 사진촬영에 즐겁게 응하며 최고의 팬서비스를 보였다.이날 우승이 확정된 뒤 김아림은 흥의 비결을 "골프를 정말 좋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사실 제가 늘 웃는 것 같지만 샷 결과에 따라 웃음이 조금씩 다르다. 웃고있지만 눈에서 레이저가 나올때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나쁜 샷을 치거나 경기 결과가 나빠도 금세 털어버린다.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 편"이라고 말했다. 비결은 "골프를 정말 좋아하기 때문"이다. 김아림은 "골프를 치는 것이 정말 즐겁고 행복하다. 골프를 못치면 속상하지만 못쳤다고 해서, 뜻대로 안풀린다고 해서 힘들진 않다"며 다시 한번 환하게 웃었다. 이같은 긍정적인 마인드는 김아림이 미국 무대에서 한층 더 성장하는 토양이 됐다. 김아림은 2020년 12월 US여자오픈 우승으로 LPGA투어 카드를 따내 2021년부터 LPGA에서 활동하고 있다. US여자오픈 이후 우승은 없지만 "내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믿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는 일관성 있는 플레이를 하는게 목표였다. 장타도 자신있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한계가 있다고 느꼈다. 어떻게 하면 다양한 걸 갖고 상황에 맞게 할 수 있을까 많이 레슨 받고 공부했다"고 했다.미국 무대에서 만나는 쟁쟁한 경쟁자들도 자신의 자양분으로 삼았다. 동갑내기 고진영과 김효주의 플레이도 열심히 관찰하고 배울 점을 찾아낸다고 한다. 그는 "고진영을 보면서도 영감을 얻는다. 인터뷰 영상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본다. 김효주의 경기 장면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스코어를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 지를 배운다"고 말했다. 이어 "장신의 넬리 코다, 제니퍼 컵초 등을 보며 다양한 구질을 구사하는 점 등을 배우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이제 김아림은 미국으로 돌아간다. 그는 "오늘 우승으로 제가 가고 있는 방향이 맞다는 확신과 자신감을 얻었다"며 "올해 최대한 많은 대회에 참가해 미국 코스에 대한 정보를 확보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 내년, 내후년 더 나은 선수가 될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한국에서 가장 우승하고 싶었다는 KLPGA 챔피언십 타이틀을 따낸 그는 이제 US여자오픈 타이틀 재탈환을 노린다. 그는 "US오픈은 정말 다르다. 제가 잘해야 하고, 가장 잘 할 수 있는 코스 세팅"이라고 말했다. 2020년 US여자오픈 우승자인 김아림은 지난해 커트탈락의 아픔을 맞봤다. "작년에는 크게 한 대 맞았어요. 올해 상금도 크게 올랐으니 꼭 다시 우승하고 싶습니다."포천=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지난달 29일 ‘크리스F&C KLPGA챔피언십’ 2라운드 경기가 열린 경기 포천 일동레이크CC 8번홀. 세 번째 샷을 준비하던 김효주(27)와 캐디 사이에 오간 대화는 이랬다. “어떻게 치는 게 좋을까?” “앞 핀이지만 그린 경사가 가파르잖아. 이럴 땐 조금 길게 쳐서 홀 뒤로 보낸 다음 오르막 퍼트를 노리는 게 낫지.”이럴 땐 선수가 질문하고, 캐디가 답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날은 반대였다. 김효주의 가방을 멘 사람이 골프에 입문한 지 3년째에 불과한 그의 친언니였기 때문이다. 캐디백에서 직접 채를 꺼낸 김효주는 세 번째 샷을 홀 1m 옆에 붙여 버디를 낚았다. 그는 일정상 전담 캐디가 함께할 수 없게 되자 “추억을 쌓자”며 친언니에게 캐디를 제안했다.언니와 함께한 1~2라운드에서 김효주는 합계 10언더파로 단독 1위에 올랐다. 그러나 상황은 4라운드 때 완전히 바뀌었다. 3라운드에 전문 캐디를 쓴 뒤 1일 최종 라운드에서 다시 친언니를 기용한 김효주는 7타를 잃었다. 결과는 공동 4위. 시속 20㎞가 넘는 강풍에 미스샷이 거듭되자 그의 얼굴에선 웃음기가 사라졌다. ‘프로골퍼에게 캐디는 꼭 필요한 존재인가’란 오랜 의문을 김효주가 이번 대회에서 다시 불러냈다는 얘기가 나온다. “캐디 비용 고공행진…가성비 떨어져”캐디는 모든 순간을 홀로 극복해야 하는 골퍼들이 골프장에서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동반자다. 선수와 함께 코스 전략을 짜고 클럽 선택을 조언한다. 경기 중 흔들릴 수 있는 멘털을 붙잡아주는 것도 캐디의 역할이다.하지만 전문 캐디의 도움을 받지 않고 우승한 사례도 적지 않다. 지난 3월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푸에르토리코 오픈에선 세계랭킹 773위 라이언 브렘(36·미국)이 가방을 든 아내와 함께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지난해 7월 김해림(33)은 나 홀로 전동카트를 끌고 나와 맥콜·모나파크 오픈의 승자가 됐다.최근 몇 년간 캐디의 몸값이 뛰면서 ‘제2의 김해림’을 꿈꾸는 선수도 늘어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캐디가 받는 급여는 4일 대회 기준으로 100만~150만원 정도다. 선수가 톱10, 톱5, 우승 등 좋은 성적을 내면 별도 보너스가 더해진다. 골프업계 관계자는 “캐디피 부담을 호소하는 선수가 많은 만큼 ‘노캐디’ 또는 캐디 경험이 적은 지인을 고용하는 사례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올해부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 선수들이 거리측정기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한 것도 노캐디 확산에 영향을 줄 것이란 분석이다. “셰플러 매직의 원동력은 캐디”반론도 만만치 않다. ‘어떤 캐디와 함께 걷느냐’가 선수 성적과 직결된다는 이유에서다. 지난달 초 마스터스대회에서 우승한 세계랭킹 1위 스코티 셰플러(26·미국)가 그런 예다. 그의 투어 인생은 지금의 캐디 테드 스콧을 만나기 전과 후로 나뉜다. ‘무관의 강자’였던 셰플러는 지난해 11월 삼고초려 끝에 스콧을 영입했다.15년 동안 버바 왓슨의 골프백을 멘 스콧은 왓슨이 2012년과 2014년 마스터스 ‘그린재킷’을 입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가 ‘셰플러호(號)’로 갈아타자 마스터스 그린재킷도 따라왔다. 셰플러는 스콧과 함께 9개 대회에 출전해 4승을 합작했고, 세계랭킹 1위로 올라섰다. ‘골프 여제’ 박인비(34)도 “캐디는 단순히 골프백만 메는 게 아니라 코스 안에서 믿음을 주는 존재”라고 말한 적이 있다.이날 김효주의 ‘7오버파 참사’도 전문 캐디의 빈 자리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쇼트게임 천재’로 불리는 김효주지만 이날은 그답지 않은 플레이가 이어졌다. 11번홀(파4)에서 더블보기를 한 데 이어 14번홀(파4)에선 트리플보기를 써냈다.핀 위치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경기 내내 강풍이 몰아쳐 코스 전략을 뒤흔들었다. 베테랑 캐디의 도움을 받아도 어려운 환경에서 초보 캐디는 큰 힘이 되지 못했을 것이란 지적이 많다. 김효주는 결국 집중력을 잃었고 눈앞까지 다가왔던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놓쳤다.포천=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1일 경기 포천 일동레이크GC(파72) 16번홀(파4). 김아림(27·사진)의 두 번째 샷이 그린 끄트머리에 걸렸다. 홀까지 거리는 13m. 퍼터를 든 김아림의 자세에는 한 치의 흔들림이 없었고, 공은 그린을 가로질러 그대로 홀에 꽂혔다. 2개 홀을 남기고 3타 차 선두로 올라선 순간, 김아림은 퍼터를 치켜들며 포효했고 갤러리들은 떠나갈 듯한 함성으로 화답했다.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시즌 첫 메이저 대회인 크리스F&C KLPGA 챔피언십(총상금 12억원)에서 김아림이 극적인 역전승으로 ‘메이저 퀸’을 따냈다. 2019년 7월 MY문영퀸즈파크 챔피언십 이후 2년10개월 만에 달성한 투어 통산 3승이자 첫 메이저 우승이다. 김아림은 2020년 US여자오픈 우승 이후 2021년부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뛰고 있다.김아림은 이날 선두 김효주(27)에게 3타 뒤진 공동 4위로 경기를 시작했다. 시속 20㎞의 강풍은 경기 내내 깃대뿐 아니라 선수들의 경기력도 흔들었다. 선두권 선수들이 보기를 쏟아내며 스코어보드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3라운드까지 선두를 지켰던 김효주는 후반 들어 무너졌다. 그사이 실수를 최소화한 김아림이 선두로 치고 올라왔다. 강풍 속에서도 전반에 버디 3개, 보기 2개로 선전한 그는 후반 파세이브를 이어가며 점수를 지켰다. 특유의 장타도 빛을 발했다. 12번홀(파5)에서는 티샷에서 313.6야드, 15번(파5)홀에서는 324.8야드를 날렸다. 김아림은 “미국에서 훈련한 것이 효과를 거둔 것 같다”고 설명했다.이날 대회장에는 8000명의 갤러리가 몰렸다. 오랜만에 한국에서 갤러리를 만난 김아림은 내내 흥겨운 액션과 환한 미소로 필드의 분위기를 띄웠다. 퍼트를 놓쳐도 환하게 웃었고, 파세이브에 성공하면 배꼽인사로 갤러리들의 박수에 답했다.포천=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