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기업 팔비틀기 말곤 물가 대책 없나
공정거래위원회가 ‘물가당국인가, 아닌가’를 놓고 논쟁이 불거진 때가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11여 년 전, 이명박 정부 시절이다. 2011년 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를 돌파하자, 이명박 대통령은 모든 부처를 ‘물가 잡기’에 동원했다. 그해 취임한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은 직원들에게 “공정위가 물가 기관이라는 것을 이해 못 하면 인사 조치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공정위는 시장경제를 감시하는 곳이지, 물가당국이 아니다”고 공개 발언했던 간부는 조용히 짐을 쌌다.

물가 상승률이 4%를 넘어선 요즘, 공정위가 무대 위로 재소환됐다.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가 지난 3일 인사청문회에서 “물가가 안정되기 위해선 좋은 공정거래위원장이 선출돼야 한다”고 언급한 것이다. 30년 넘게 제조업에 몸담은 기업인은 “근래 들어본 말 중 가장 어이없는 말”이라고 혹평했다.

새 정부도 구태 답습 조짐

한 후보자의 관련 발언은 청문회 둘째 날 밤 9시20분께 나왔다. 청문회 끝자락이라 언론 보도조차 많지 않았다. 어떤 맥락이기에 기업의 임원이 ‘어이없다’고 느꼈는지 국회 영상회의록에서 한 후보자의 발언을 직접 들어봤다.

먼저 배진교 정의당 의원이 플랫폼 기업에 대한 독점 예방법이 필요하지 않겠냐는 질문을 던졌다. 한 후보자의 답변은 이랬다. “플랫폼만 문제가 아니다. 섹터별로 스터디해 독과점을 깨야 한다. 공정위원장이 혁신하고 개혁해야 물가가 구조적으로 안정된다.”

기업인이 한 후보자의 이 같은 발언에 분노한 이유는 새 정부도 ‘기업의 팔을 비틀어 물가를 잡겠다’는 과거 정부와 다르지 않다고 느껴서다. 이명박 정부는 이른바 ‘MB물가’로 불리는 52개 필수품을 선정해 개별 가격을 통제했다. 당시 공정위는 가격불안품목 감시반을 구성해 기업들을 단속했다.

‘기업 군기 잡기’는 문재인 정부도 예외가 없었다. 지난 1월 농림축산식품부는 CJ제일제당, 농심, 대상, 오뚜기, SPC 등 식품업체 5곳과의 간담회 자리에 공정위 공무원을 대동했다. 2월에는 식품업체 9곳을 호출했고 이 자리엔 기획재정부 관계자가 왔다. 간담회에 참석했던 식품업체 직원은 “가격 인상을 자제하지 않으면 공정위 조사나 세무 조사를 받을 수 있다는 무언의 압력을 느꼈다”고 했다.

겹겹 쌓인 고용 규제 풀어야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는 대외 변수를 통제할 정책 수단은 사실상 없다. 전쟁이나 해외 곡물 작황을 정부가 어찌할 도리는 없기 때문이다. 금리 등을 통해 통화량을 조절하거나 기껏해야 구두 개입이든 달러 매도 개입이든 조심스레 환율 방어에 나설 뿐이다. 세금을 깎자니 세수가 아쉽다. 그래서 정부는 기업들이 치솟는 원가를 제품 가격에 반영하지 못하도록 단속하는 구태를 반복한다.

‘물가의 구조적 불안 요인’은 한 후보자가 언급한 독과점뿐만이 아니다. 인건비도 변수다. 제조업과 서비스업 모두 심각한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다. 한 식품공장은 단순 포장 업무를 하는 직원을 구하지 못해 전체 생산라인을 돌리지 못하고 있다. 어떤 레스토랑은 주방 도우미가 없어 1주일에 하루 문을 닫기로 했다. 아르바이트도 최저임금보다 시급을 훨씬 높여야 사람이 구해진다. 젊은이들이 기피하는 일자리에 외국인을 채용하는 것도 업종제한, 총량제한 등으로 막혀 있다.

기업들은 파견근로자 규제, 외국인 고용 허가제, 주 52시간 근로제 등 겹겹이 쌓인 고용 규제가 바로 구인난과 인건비 상승을 초래하는 ‘물가의 구조적 문제’라고 지목한다. MB식 물가 잡기는 실패한 정책이다. 새 정부는 고용 규제를 먼저 풀어 ‘신발 속 돌멩이’를 꺼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