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첫 도입된 인사청문 제도…2005년 국무위원 전원 청문대상 확대

'부적격 딱지' 낙마·낙마·낙마…1기 내각 인사청문회 잔혹사
윤석열 정부의 1기 내각 인선 완료로 인사청문회 계절이 돌아온 가운데 역대 새정부 출범 때마다 빈번했던 '낙마 사례'에 관심이 쏠린다.

역대 낙마사례를 살펴보면 새정부 1기 내각에서 최소 3명은 인사청문의 벽을 넘지 못하고 탈락했다.

총리를 포함한 내각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 통과는 새정부의 순조로운 국정운영 출발과 직결돼 있다.

특히 여소야대 상황에서 막이 오른 이번 인사청문 정국에선 여야 간 검증의 창과 방패가 더욱 치열하게 맞붙을 전망이다.

인사청문회 제도는 2000년 김대중 정부 때 처음 도입됐다.

초기엔 국가정보원장·검찰총장·국세청장·경찰청장 등 4대 권력기관장을 청문 대상에 포함했다가, 2005년엔 청문 대상을 국무위원 후보자 전원으로 확대한 뒤 현재까지 제도의 큰 틀이 이어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 집권 초엔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이유정 헌법재판관 후보자,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 등이 줄줄이 낙마했다.

안경환 후보자의 경우 문재인 정부의 사법개혁을 이끌 첫 법무부장관으로 지명돼 많은 관심을 모았지만 부적절한 내용의 과거 칼럼 등으로 논란을 일으키다, 몰래 혼인 신고한 과거 이력까지 드러나면서 자진사퇴했다.

조대엽 후보자는 음주운전, 막말, 임금체불 시비 등이 드러나면서 낙마했다.

이유정 후보자는 부적절한 주식투자, 박성진 후보자는 자녀 이중국적과 뉴라이트 역사관 등이 도마에 오르면서 사퇴했다.

'부적격 딱지' 낙마·낙마·낙마…1기 내각 인사청문회 잔혹사
박근혜 정부는 초대 총리 지명자가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치지도 못한 채 지명 5일 만에 물러난 불명예를 안았다.

김용준 당시 국무총리 지명자는 부동산 투기와 아들 병역 면제 의혹이 증폭되면서 자진 사퇴했다.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도 부동산 투기 의혹 등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결국 여론의 압박 속에 스스로 물러났다.

이명박 정부 당시엔 이춘호 여성부 장관 내정자가 내정 후 엿새 만에 낙마했다.

장관 내정 직후 부동산 과다 보유와 투기 의혹 등이 쏟아졌다.

남주홍 통일부 장관 내정자와 박은경 환경부 장관 내정자도 대통령 취임 전 낙마했다.

국무위원 인사청문 제도가 2005년부터 시행됐기 때문에 김대중·노무현 정부 초기엔 장관 후보자 낙마 사례가 드물었다.

다만 국무총리의 국회 인준은 인사청문 제도와 관계없이 역대 정부에서 모두 만만치 않았다.

인사청문 제도 자체를 처음 도입한 김대중 정부는 초대총리로 김종필 전 자민련 명예총재를 지명했지만, 당시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은 김 후보자의 도덕성과 5·16 쿠데타 가담 전략, 경제에 대한 비전문성 등을 들어 인준에 반대했다.

결국 김대중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총리서리 체제로 내각을 가동해야 했고, 총리 인준안은 집권 후 6개월이 지나서야 국회를 통과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