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은행이 서울시 ‘금고지기’ 수성에 성공했다. 연간 48조원에 달하는 시 금고 운영권은 1915년 경성부 금고 시절부터 104년간 우리은행이 독점해왔으나 2018년 입찰 당시 파격적인 조건을 내건 신한은행이 처음으로 따냈다. 그 이후 4년간 절치부심해온 우리은행은 이번에 명예 회복을 노렸지만 끝내 실패로 돌아갔다. 작년 은행권 최대 순익을 내면서 ‘다크호스’로 꼽히던 국민은행도 4년 뒤를 기약하게 됐다.

신한은행 '年 48조' 서울시 금고 잡았다
서울시는 14일 시 금고 지정 심의위원회를 열고 44조2000억원 규모의 일반·특별회계예산 관리를 맡는 1금고 우선협상대상 은행에 신한은행을 선정했다. 3조5000억원 규모의 기금 관리를 담당하는 2금고 역시 신한은행이 가져갔다. 2018년 입찰에선 우리은행이 2금고를 차지했지만 이번엔 신한은행이 1, 2금고 모두를 독식하게 됐다.

신한은행은 이달에 서울시와 최종 약정을 체결하고 내년부터 2026년까지 4년간 서울시 일반·특별회계예산(1금고) 및 기금(2금고)을 관리하게 된다.

신한은행은 기관 영업 분야 베테랑으로 꼽히는 박성현 기관그룹장(부행장)을 중심으로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서울시 금고 유치전을 준비해왔다. 박 부행장은 기관고객부장을 맡았던 2018년 신한은행이 우리은행을 누르고 1금고를 유치할 때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진옥동 신한은행장도 서울시 금고 수성을 강조하면서 박 부행장에게 힘을 실어준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권 관계자는 “신한은행이 지난 4년간 서울시 금고 운영에 많은 자금과 인력을 투입한 만큼 재유치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섰다”고 말했다.

이번 서울시 금고 선정 입찰(총 100점 만점)에선 시에 대한 대출·예금 금리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2018년 18점이던 대출·예금 금리 배점이 올해는 20점으로 높아져 은행들의 이자 경쟁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신한은 정기예금 예치금리(7점)와 공공예금 적용금리(6점) 등 서울시가 중요하게 판단하는 예금금리 부문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신한은 2018년 입찰보다 평가 배점이 4점에서 2점으로 축소된 협력사업비(출연금) 면에서도 합격점을 받았다. 출연금은 일종의 협력사업비로 금고 은행이 지방자치단체 자금을 대신 운용해주고 투자수익 일부를 내놓는 것을 말한다. 4년 전 신한은 서울시에 3015억원에 달하는 출연금을 써내면서 우리은행과 국민은행을 제쳤다. 신한은 현금자동입출금기(ATM) 대수 등 시민 편의성(18점) 평가에서도 다른 은행을 앞섰다. 신한은행(2094대)은 시중은행 중 유일하게 서울 시내에서 2000대 이상의 ATM을 운영 중이다.

은행권이 서울시 금고 유치에 공을 들이는 것은 막대한 금고 규모와 홍보 효과 때문이다. 서울시 금고는 연간 운용 규모가 1, 2금고 통틀어 47조7000억원으로 전국 광역단체 금고 중 규모가 가장 크다. 세입·세출 업무로 수익을 낼 수 있는 데다 ‘서울 대표 은행’ 타이틀을 앞세워 신규 고객 유치 및 브랜드 가치 제고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향후 서울 시내 25개 자치구 금고 유치전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할 가능성이 크다.

김보형/박상용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