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심의 신청 기각한 권익위 "폐지시점 2029년까지 유예하고 더 논의하라"
국토부 "업종전환이 시설물업에 더 유리해…권익위 의견 불수용"

국토교통부가 추진 중인 건설업종 개편안의 주요 내용인 시설물유지관리업(시설물업) 폐지 방안에 대해 국민권익위원회가 연이어 "폐지 시점을 연기하고 추가 논의를 하라"며 제동을 걸고 나섰다.

귄익위의 앞선 같은 결정에 불복해 국토부가 재심의를 신청했으나 권익위가 이마저도 기각하면서 업계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그러나 국토부는 권익위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고 예정대로 시설물업 업종 전환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22일 건설업계 등에 따르면 권익위는 지난달 28일 국토부가 신청한 '시설물유지관리업 폐지 이의에 대한 재심의' 건에 대해 "재심의 신청을 기각한다"고 의결했다.

권익위는 기각 결정을 내리면서 "시설물업 유효 기간을 2029년 말까지 유예하고 세부 시행방안을 논의하라"는 원의결을 인용했다.

권익위는 앞서 지난해 10월 시설물유지관리업 종사자 2만4천535명이 제기한 '시설물유지관리업 폐지 이의' 건에 대해 시설물유지관리업계의 손을 들어주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시설물업 폐지 결정 과정에서 업계의 의견수렴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시설물업을 폐지하는 이유도 설득력이 없다는 게 권익위의 판단이었다.

국토부는 권익위 결정 직후 이런 판단을 수용할 수 없다며 의결의 취소를 구하는 재심의를 신청했으나 이번에도 똑같은 결과를 받아들게 됐다.

권익위, 시설물업 폐지안 재차 '제동'…국토부 "계획대로 추진"(종합)
국토부는 2018년부터 건설사업 업역·업종 개편 작업을 추진해 왔다.

지난 40여년간 종합건설업과 전문건설업의 칸막이 규제로 상호 시장 진출이 가로막히는 고질적인 병폐를 해결하겠다는 취지였다.

이를 통해 국토부는 전문건설업 29종 중 28종을 14종으로 통합하는 '대업종화'를 추진하고, 전문이든 종합건설이든 자유롭게 상호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했다.

이때 전문건설업 중 대업종화되지 않고 남은 것이 시설물유지관리업이었는데 국토부는 시설물업은 폐지하고 기존 업체는 2023년 말까지 종합건설업이나 전문건설업으로 전환하도록 했다.

종합·전문 업역 폐지로 모든 건설업체가 시설물업이 수행 중인 유지보수 업역에 참여하게 돼 시설물업을 별도의 업역·업종으로 유지할 실익이 없어졌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사실 이전부터 시설물업은 한 업종에만 등록해도 모든 공종의 유지 관리 공사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른바 '만능면허' 논란을 빚으며 종합-전문건설업과의 갈등이 잦았다.

업종 개편을 위한 청문회 등에서도 시설물업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첨예한 이슈로 부각됐다.

시설물업 폐지는 종합건설과 전문건설업계 입장에서는 공동의 이익인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시설물업계는 완공된 시설물의 유지·보수 공사만 수행하다가 갑자기 신축 공사를 포함하는 업종으로 전환하라는 것은 무리한 주문으로, 결국 심각한 경영난을 겪거나 폐업할 수밖에 없다며 반발하면서 권익위에 구제를 신청했다.

권익위는 이 싸움에서 시설물업계의 손을 들어줬다.

우선 절차상의 문제점이 지적됐다.

시설물업계는 국토부가 2019년 8월 건설업종 개편 논의 회의에서 시설물업 처리 방안을 추후 논의하기로 해놓고 이듬해 1월 갑자기 시설물업 폐지 결정을 통보하는 등 업계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았다고 주장했고, 권익위는 이를 모두 인정했다.

이런 결정은 재심의 과정에서도 유지됐다.

국토부는 재심의 의견서에서 "시설물업계와 충분히 협의한 후 건의 사항을 대폭 반영했다"고 주장했으나 권익위는 "충분한 논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일축했다.

아울러 국토부는 "이미 1월 기준으로 시설물업체 7천197개 중 3천972개의 업체 전환으로 전환율이 55%"라며 업종 전환이 원활하게 추진되고 있다고 밝혔으나 권익위는 "나머지 45%에 해당하는 업체는 여전히 업종전환을 하지 않았다"며 수용하지 않았다.

권익위는 오히려 "업종을 전환한 상당수 업체는 사실상 (국토부의) 압력에 의한 선택이었다는 취지의 탄원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하려고 준비 중"이라고 지적했다.

권익위, 시설물업 폐지안 재차 '제동'…국토부 "계획대로 추진"(종합)
국토부는 시설물업 폐지를 둘러싼 8개 쟁점에 대해 반박 논리를 폈으나 권익위는 이를 단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권익위는 "국토부의 주장을 감안해보더라도 업종전환 시의 권익침해를 가급적 최소화하기 위해 '시설업 유효기간을 좀 더 유예해 세부 시행 방안을 충분히 논의하고 제도적 미비점을 보완·수정할 수 있도록 조치하라'는 원의결의 취지를 번복할 정도는 아니라고 보인다"고 적시했다.

그러면서 권익위는 2029년 말까지 시설물업 폐지를 유예하고 그전까지 업계의 의견을 더 수렴하면서 해결책을 마련할 것을 재차 권고했다.

2029년 말은 국토부가 영세 시설물업체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업종 전환을 하되 추가 자본금이나 기술자 보유 등 등록기준 충족 의무를 면제해 주기로 한 시한이다.

권익위 권고는 말 그대로 권고일 뿐 반드시 수용해야 하는 의무사항은 아니다.

이에 국토부는 지난 10일 "권익위의 의견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권익위에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토부는 불수용 이유에 대해 "권익위의 판단대로 2029년까지 업종전환 기간을 연장할 경우 그 이전에 업종 전환을 마친 사업자가 토목업 등을 수주하는 경우 더 높은 자본금과 인력 등의 등록기준을 충족해야만 사업이 가능해 상당수 시설물 업체의 부담이 크게 증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토부는 또 "현 정책은 업종전환 시 2023년까지 전환한 업종과 종전 시설물업의 지위를 동시에 보장하고, 또 등록기준 유예와 실적 가산 등의 혜택을 부여해 권익위 의견보다 시설물업에 유리한 구조"라고 주장했다.

국토부가 권익의의 권고를 수용하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국회의 움직임과 새 정부 출범 이후의 정책 수정 가능성 등이 변수로 남아 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미 국회에 시설물업을 시설물안전법상 특수업종으로 전환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해 놓은 상태다.

아울러 건설업종 개편이 문재인 정부의 역점 사업인데다 현재 논란도 일고 있는 만큼 오는 5월 새 정부가 들어선 뒤 정책 방향이 바뀔 가능성도 제기된다.

대한시설물유지관리협회 관계자는 "권익위가 두 차례나 업계의 어려움을 청취해 권고한 만큼 국토부는 일방적인 업종 폐지에 대한 부당성과 사업자들의 고충을 깊이 인식하고, 지금이라도 이해 당사자들과 충분히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