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두기 완화 시그널에 '샤이 오미크론' 급증…약국에는 감기약 품귀
확진자 예측 엇나가면서 방역 무용론까지…의료계 "병원은 전쟁터 상황"

17일 코로나19 신규확진자 62만명, 사망자 429명, 위중증 1천159명.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인 오미크론 확산세가 악화하면서 병원과 학교, 장례식장 등 사회 곳곳에서 혼란이 발생하고 있다.

감염 확산과 별개로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완화하려는 시그널을 보내면서 한쪽에서는 코로나19가 '사실상 감기 수준' 아니냐는 인식과 함께 검사마저 기피하는 '샤이 오미크론' 현상이 퍼지고 있다.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전혀 다른 위기감이 퍼지는 모습이다.

사망자 급증으로 장례식장에서는 긴 대기열마저 생겨나고 있으며 의료진은 병원이 이미 전쟁터나 다름없는 상황이라고 호소하고 있다.

학교 현장에서도 백신 접종을 하지 못한 자녀들을 둔 학부모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최악 오미크론 사태 속 병원·학교·장례식장 곳곳 대혼란
◇ 일상 유지하려 검사 기피…약국에서는 감기약 품귀
청주에 거주하는 대학생 A(22)씨는 닷새 전 가래, 코막힘, 기침 등 전형적인 오미크론 증상을 모두 겪었지만 PCR은 물론 자가검사도 하지 않고 일상생활을 유지했다.

A씨는 "확진 판정을 받으면 격리해야 하고 격리하면 일상에 지장이 많다.

무엇보다 오미크론은 독감도 아닌 일반 감기 같아 약국에서 파는 약을 먹으며 스스로 치료해 증상이 다 사라졌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직장에 다니는 김모(23)씨도 지난달 목감기 기운을 느낀 후 자가검사 키트로 검사해 '두 줄'이 떴지만 따로 PCR 검사는 받지 않았다.

회사와 지인들에게 양성 반응이 나왔다는 사실도 말하지 않고 재택근무를 했다.

김씨는 "확진자라고 알리면 눈치도 보이고 나에 대한 인식이 나빠질까 걱정돼서 그랬다.

주변을 봐도 확진됐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는 경우가 많더라"고 말했다.

생계 때문에 검사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충청 지역에서 1년째 배달 라이더로 일하는 김모(28)씨는 "예전에는 걸려서 일을 못 하면 지원금이라도 나왔는데 이제 생계지원금도 많이 줄어서 무조건 확진은 피하자는 생각들을 한다"고 했다.

검사 없이 자체 치료를 선택하는 '숨은 확진자'들이 늘면서 약국에는 감기약들이 동났다.

명동역 인근 한 약국 관계자는 "자가검사키트는 요새 남아도는데 감기약이 문제다.

타이레놀은 4주 전부터 품절이고 아이들 해열 시럽과 진해제도 1주 전부터 없다.

어른들 종합감기약도 추가 주문이 안 돼 난리"라고 말했다.

을지로4가역 인근 약국 측도 "감기약이 부족한 게 아니라 없는 수준이다.

종류와 상관없이 부족하고 아이들 약은 정말 없다"고 호소했다.

최악 오미크론 사태 속 병원·학교·장례식장 곳곳 대혼란
◇ 자영업자 "거리두기 아예 풀자"…학부모 "학교 보내기 불안"
확진자는 폭증하고 있지만 방역 장기화로 벼랑 끝에 내몰린 자영업자들은 지금이라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아예 폐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양천구에서 해산물 요리를 판매하는 사장 장모(64)씨는 "가게 월세가 6개월 이상 밀렸고 집세마저 밀려 지칠대로 지쳤다.

오늘도 가게 문을 열고 점심에 한 테이블을 받았다"고 한숨을 쉬었다.

거리두기 기준을 8명·밤 12시까지로 완화할 수 있다는 소식에는 "진작에 풀었어야 한다.

인원은 어차피 4명씩 앉으니 상관 없고 시간을 풀어줘야 한다"고 했다.

관악구에서 고깃집을 하는 한 자영업자도 "단체 손님이 많았는데 요새는 회식도 안 하니까 매출 타격이 정말 크다.

이렇게 가다간 코로나도 못잡고 자영업자 망하는 것도 못 잡는다"며 "거리두기 같은 건 그만했으면 좋겠다.

다 풀어버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백신 접종을 하지 않았거나 감염에 취약한 자녀들을 둔 부모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서초구에 사는 초등학생 학부모 이모(45)씨는 "새 학기에 겨우 전면등교를 시작했는데 확진자가 속출해서 일주일만에 원격 수업으로 전환됐다"며 "정부가 학생들의 교육권은 생각하지 않고 자영업자들만 의식해 자꾸 거리두기를 완화하려는 것 같아서 너무 화가 난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4학년 아들을 둔 양천구의 정모(42)씨는 "아들이 일주일 내내 등교하고 있지만 솔직한 마음으로는 작년처럼 하는 게 나은 것 같다.

담임선생님이 1주일에 8∼9명씩 확진자가 나온다고 알려주는데 불안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워킹맘 중에는 가족 중 확진자가 있어도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경우가 있는데 이야기가 안 나올 수 없다"고 해 전면등교로 전업주부와 워킹맘 사이에 미묘한 갈등도 내비쳤다.

중학교 1·3학년 손녀들을 양육하는 B(64)씨는 "애들이 백신을 맞았지만 누가 확진자일지 모르는 상황에서 학교에 모이게 하니 걱정된다.

또 하루 확진자가 60만명씩 나오는데 가게 영업시간 제한까지 확 푸는 건 문제"라고 우려했다.

최악 오미크론 사태 속 병원·학교·장례식장 곳곳 대혼란
◇ "화장장 없어 4일장" 곡소리…전문가들 "방역체계 정비해야"
장례식장에는 요즘 삼일장 이상을 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화장장을 찾지 못해서다.

이날 오전 찾은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는 빈소 14곳이 꽉 차 있었다.

장례식장 관계자는 "최근 전체 고인 중 대략 40%는 코로나로 돌아가신 분들"이라며 "시신을 총 18구 모실 수 있는 안치실도 다 차 있다.

장례가 끝난 뒤에도 며칠씩 대기하다가 화장장으로 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코로나 사망자를 화장하는 서울 서초구의 서울추모공원 화장로 11기도 쉴 새 없이 가동되고 있었지만 대기열이 늘어졌다.

이 화장장은 이달 20일까지 예약이 꽉 찼다.

상조업체 프리드라이프 의전지도사 송재명(49)씨는 "이 일을 6년 했지만, 화장 대기가 이렇게 심한 적은 없었다"며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은 물론 부산 등 전국적으로 화장장이 너무 부족하다.

유족은 가족을 잃어서 힘들고, 영안실 안치도 바로 안 돼서 힘들고, 화장장도 못 찾아 힘든 그야말로 삼중고"라고 혀를 찼다.

전문가들은 방역체계를 정비해야 할 시점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하루 사망자가 600명까지 나올 수 있다고 봤는데 1천명까지도 가능하다"며 "의료현장은 아수라장이고 전쟁터"라고 현장 상황을 전했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현재 확진이 돼도 병원에 갈 수 없고 격리만 하게 되니 생활이 어려운 분들이 검사를 안 하는 것을 뭐라고 할 수 없다"면서 "정부가 감기나 독감처럼 코로나19를 관리하겠다면 진료 시스템도 독감처럼 일반 진료를 보고 주사를 맞거나 약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교수도 "충분히 사망을 예방할 수 있고 덜 심각하게 진행할 수 있는데 정부 방역지침이 그렇지 못해 문제"라며 "산에 불이 났는데 불을 끄는 게 아니라 부채질을 해서 빨리 태워 더 탈 게 없어지게 만들자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정현 임성호 강수환 강태현 김윤철 김준태 신현우 유한주 임지우 차지욱 기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