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선관위원장, 리더십 손상…지방선거 차질 우려도
안팎 사퇴론에도 침묵하는 노정희…국힘 "결단해야" 거듭 압박
노정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 17일 대선 사전투표 부실관리 논란과 관련해 안팎에서 제기된 사퇴 압박을 거부하는 모습이다.

노 위원장은 이날 오전 정부 과천청사에서 선관위원 전체회의를 주재하면서 선관위의 현 상황에 책임감을 느끼며 앞으로 선거관리에 더 힘쓰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복수의 참석자들이 전했다.

6·1 지방선거 관리에 만전을 기하겠다는 메시지를 통해 선관위 안팎에서 고조된 사퇴 요구를 사실상 물리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는 전날 김세환 전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의 사의 표명 소식에 "부실 선거의 원흉인 노 위원장을 살리기 위한 꼬리 자르기"라면서 노 위원장 사퇴를 재차 요구했다.

선관위 내부에서도 노 위원장을 비판하는 목소리들이 나왔다.

전국 시·도 선거관리위원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소속 상임위원 15명은 전날 발표한 건의문에서 "(선관위의)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고 대외적인 신뢰 회복을 위해 위원장의 대국민 사과와 거취 표명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일선 선관위를 책임지는 1급 상임위원들이 '노정희 비토'로 해석될 수 있는 집단행동에 나선 것이다.

현직 대법관인 노 위원장은 지난 2020년 11월 취임했으며 관례상 대법관 임기인 2024년 8월까지 위원장을 맡게 돼 있다.

그는 지난 5일 코로나19 확진·격리자의 사전투표 현장에서 이른바 '소쿠리 투표'로 상징되는 대혼란이 벌어진 이후 국민의힘 등으로부터 퇴진 압박을 받았으나, 이와 관련해 침묵으로 일관해 왔다.

이틀 뒤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우선 본 선거 대책 마련에 집중하겠다.

다른 말씀은 다음 기회에 드리겠다"고 했으나 이후 거취와 관련된 입장 표명은 없었다.

대선 본투표 전날인 8일 발표한 대국민 담화에서도 "위원장으로서 책임을 통감하며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만 했다.

이날 선관위원들에게 유임 의사를 내비친 것은 김 전 사무총장이 사전투표 관리부실에 책임을 지고 사퇴한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선관위의 공식 수장은 선관위원장이지만 선거 사무를 총괄하는 인사는 사무총장이다.

그러나 당장 국민의힘에서는 "'소쿠리 투표' 참사의 책임자인 노 위원장은 사퇴 결단하라"며 재차 압박했다.

허은아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무신불립(無信不立·신뢰 없이 설 수 없다)"이라며 "노 선관위원장의 길은 이제 사퇴뿐"이라고 밝혔다.

강민국 원내대변인도 구두 논평에서 "선관위원장은 '염치'가 있다면 당장 사퇴 결단을 내리기를 바란다.

그것이 국민을 위한 최소한의 도리"라고 주장했다.

이어 "무능한 선관위원장의 지휘 아래 직접·비밀 투표의 선거 기본 원칙은 무너졌다"면서 "사전투표 날 큰 혼란이 예상되는 데도 휴일이라 출근하지 않았다는 것은 선거 관리의 중책을 맡은 책임자로서 기본 소양을 의심케 한다"고 비판했다.

선관위가 현 정권에 편향돼 있다고 주장해온 국민의힘의 공세는 당장 잦아들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70여 일 남은 지방선거를 앞두고도 편향성, 중립성 시비가 일 가능성도 있다.

노 위원장의 리더십이 손상된 상황에서 선관위가 사전투표 사태로 촉발된 선거 관리에 대한 불신을 회복하고 지방선거를 잘 치를 수 있을지 우려도 나온다.

시·도 선관위를 책임지는 상임위원들이 전날 건의문에서 조직 내 사기 저하와 지방자치단체의 선거사무 비협조 등을 우려하면서 "선거 관리 부실 책임이 있는 간부의 즉각적인 인적 쇄신이 필요하다"고 반기를 들고 일어남에 따라 조직 내 분란도 우려된다.

국민의힘 이재오 상임고문은 전날 KBS라디오에서 노 위원장을 포함해 선관위원 7명의 전원 사표를 촉구하면서 "이대로 끌고 가면 국민이 선관위를 안 믿는다.

선거 끝나면 만날 부정선거(의심) 소리가 나온다"고 우려했다.

사의를 표한 김 전 사무총장의 면직이 하루 만에 의결된 데 대해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지역선관위에 재직 중인 아들의 채용·승진·출장 과정에 특혜 논란이 제기된 상황에서 그 진상 규명과 그 결과에 따른 인사 조처 없이 사직서를 수리했다는 지적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