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는 지난 5년 임기 내내 탈(脫)원전 프레임과 ‘녹색 환상’에 갇혀 국가 에너지 정책을 혼란에 빠트렸다는 비판을 받는다. 탈원전과 탄소중립 정책을 동시에 추진하면서 아직 경제성이 모호한 신재생에너지 확대에 가속 페달을 밟았다는 평가다. 그 결과 발전 비용이 늘어난 한국전력은 눈덩이 적자를 떠안았고, 전력 공급 불안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전문가들은 “새 정부는 탈원전 정책을 조속히 폐기하고 완전히 멈춰버린 자원외교에 다시 시동을 걸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에너지 안보' 위협 탈원전, 빨리 폐기하고 자원외교 시동 걸어라

현실화되는 탈원전 청구서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전력단가가 비싼 액화천연가스(LNG) 발전 비중이 높아지면서 국가 전체의 에너지 비용 부담이 급증하고 있다. 치솟는 연료비에도 지난해 전기요금을 올리지 못한 한전은 올해 20조원의 영업적자가 예상되는 등 탈원전 부메랑을 맞고 있다. 이 손실액 모두 이자까지 더해 국민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한 에너지 업체 대표는 “현실에 발을 딛지 않은 이념적 접근의 후폭풍을 국민들이 모두 떠안게 됐다”며 “고유가 파고 속에서 탈원전과 신재생 과속의 충격파는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205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70%로 늘리는 정부의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또 다른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다. 신재생 설비 투자에 막대한 비용이 필요해서다. 한국원자력학회 등에 따르면 2050년까지 발전분야에서 1877조원의 설비 투자 비용이 필요하다. 태양광 발전에만 630조원, 에너지저장장치(ESS) 설치에도 600조원이 필요하다.

이 같은 비용 증가는 정부가 작년 11월 ‘국가 온실가스 감축계획(NDC)’을 발표한 이후 현실화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당시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2030년까지 배출 온실가스를 2018년 대비 40% 이상 감축하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전문가들은 신재생에너지 도입으로 온실가스를 줄이는 정책 방향은 맞지만 현 에너지원 비중 등 국내 현실을 감안할 때 그 이행 속도가 너무 빠르다고 지적한다.

정부의 NDC 목표를 달성하려면 2030년 탄소배출 허용 총량이 연간 3억2000만t으로 줄어들어야 한다. 작년보다 2억6900만t 줄어든 수치다. 탄소배출권 시장 관계자는 “만약 국내 기업들이 현재의 탄소배출 수준을 유지한다면 2030년께 기업들은 배출권 구매 비용으로만 30조원 이상을 더 써야 한다”며 “에너지 정책이 국가 경제에 끼칠 영향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탈이념·탈정치적 에너지 정책 짜야”

전문가들은 탈원전 정책의 조속한 폐기와 자원외교 활성화를 차기 정부의 최우선 정책 과제 중 하나로 꼽았다. 현 정부가 세운 계획대로라면 내년 고리 2호기를 시작으로 2030년까지 10기의 원전이 폐쇄된다. 총 8.45GW의 전력을 생산하는 원전이 사라지는 셈이다.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발전이 단계적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전력단가는 계속 비싸질 수밖에 없다. 정동욱 한국원자력학회 회장은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서라도 원전을 계속 활용해야 한다는 점은 명백하다”며 “차기 정부에서 신한울 3·4호기의 조속한 건설 재개를 추진하고 노후 원전의 수명 연장도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탈원전 정책 탓에 속도를 내지 못했던 소형모듈원자로(SMR) 등 차세대 원전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SMR 투자가 에너지 해외 의존도, 전력 생산 비용, 탄소배출량을 모두 낮추는 해법이 될 수 있어서다. 신재생 발전 확대에 따른 전력 불안정 문제는 LNG·양수발전 등 유연성 자원을 늘려 대처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적폐 청산이란 정치적 구호에 함몰돼 자원외교를 뒤집은 것도 대표적인 근시안적 행정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강천구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는 “해외 자원 개발 사업 성과는 최소 10년을 기다려야 하는 장기 과제”라며 “1년 단위로 사업성을 평가해 과거 정부의 자원외교 노력을 폄훼하고 적폐로 낙인찍으면 자원 확보는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지훈/정의진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