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천재들은 왜 한꺼번에 등장하는가
19세기 말 오스트리아 빈은 천재들의 도시였다. 정신분석학을 창시한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비롯해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물리학자 루트비히 볼츠만, 미술가 구스타프 클림트,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 소설가 로베르트 무질 등이 모두 같은 시기 빈에서 살았다.

천재들은 항상 이렇게 떼를 지어 나타났다. 그리스 아테네가 그랬고, 이탈리아의 피렌체가 그랬다. 미국 공영 라디오방송 NPR의 전 해외특파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에릭 와이너는 왜 천재들이 특정 지역에서 한꺼번에 등장하는지 궁금했다. 그는 아테네, 항저우, 피렌체, 에든버러, 콜카타, 빈, 실리콘밸리 등 천재들이 출몰했던 지역을 돌아다니며 이유를 파헤쳤다. 《천재들의 지도》는 그 결과물이다. 책은 기행문처럼 읽힌다. 저자는 거리를 돌아다니고,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며 혹은 맥주를 홀짝이며 감상에 빠져든다. 아리스토텔레스 등과 가상의 대화를 나누기도 하면서 천재들이 살았던 시대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책마을] 천재들은 왜 한꺼번에 등장하는가
천재는 풍요롭고 안정된 사회에서 많이 나타날까. 그렇지 않다. 아테네가 대표적인 사례다. 아테네는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쓰레기장이었다. 길거리는 좁고 지저분했다. 사람들은 자기 집 마당이나 길에서 볼일을 봤다. 악취가 진동했다. 땅이 비옥하지도 않았다. 언덕과 바위투성이였다. “천재의 장소가 낙원과 비슷하리라는 생각이야말로 큰 오해다. 결코 그렇지 않다. 낙원은 천재와 상극이다. 낙원에서는 아무것도 요구되지 않는 데 비해 창조적 천재는 새롭고 기발한 방식으로 요구를 충족하는 데 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아테네가 여느 도시국가와 다른 점은 ‘대화’와 ‘개방성’에 있다. 소크라테스 이전 사람들은 말은 했지만 대화는 아니었다. 독백이었다. 한쪽의 신분이 높으면 더 그랬다. 아테네 시민은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 모든 금기에 의문을 품고 자유롭고 격렬하게 대화하고 토론했다. 외국인과 외국 문물, 아이디어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페니키아인에게는 알파벳을, 이집트인에게는 의약과 조각을, 바빌로니아인에게는 수학을, 수메르인에게는 문학을 빌렸다. 그들은 지적 도둑질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그걸 알아봐 주는 사람이 없으면 두각을 나타내기 힘들다. 피렌체는 후원자와 멘토의 역할이 천재의 탄생에 큰 역할을 했음을 보여준다. 로렌초 데 메디치는 자신의 정원에서 열네 살도 안 된 소년의 재능을 알아봤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였다. 피렌체에서 공방을 운영하던 안드레아 델 베르키오는 시골에서 갓 올라온 젊은이에게 자기가 그리던 그림의 중요한 부분을 맡겼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였다. 저자는 “르네상스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팀의 결실이었다”며 “참된 천재성은 언제나 결코 개인의 문제일 수 없다”고 강조한다.

책은 천재는 유전적으로 높은 지능을 타고난다거나, 부유한 환경에서 물심양면으로 지원받아 만들어진다는 등의 주장을 반박한다. 천재는 천재를 낳지 못했다. 부잣집 아이들만이 천재적인 업적을 이루지도 않았다. 다빈치는 서자였고 그로 인해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다.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과 파블로 피카소는 난독증이었다. 프로이트는 학계의 괴짜 아웃사이더였다. 대신 이들은 결핍과 부족함에 굴하지 않고 도전했다.

이들은 ‘야누스적 사고’에 강했다. 모순된 아이디어를 ‘말이 안 된다’며 무시하지 않았다. 새로운 눈으로 바라봤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한 물체가 움직이는 동시에 정지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착안해 일반상대성이론을 만들었다. 닐스 보어는 빛이 파동이자 입자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미국 실리콘밸리는 ‘천재들의 도시’가 지녔던 특성을 모두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곳이다. 아테네처럼 어떤 아이디어든 자유롭게 나눌 수 있고, 피렌체처럼 벤처캐피털(VC)이 후원자와 멘토 역할을 하고 있다. 에든버러처럼 실용성을 추구하고, 빈처럼 세계 곳곳의 천재들을 모여들게 한다. 이민자의 자녀든, 대학 중퇴자든 실력만 있으면 된다.

이 책의 요점은 천재는 의도의 산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천재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사회와 도시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 한국은 어떤가. 영재학교만 세워놓고 천재가 나오기를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