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미술계 파격의 아이콘 뱅크시…그의 정체를 추적하다
2018년 영국 런던의 소더비 경매장. 뱅크시의 작품 ‘풍선과 소녀’가 15억4000만원에 낙찰돼 경매사가 망치를 내려치는 순간, 액자 속 그림이 밑으로 흘러내리며 세절됐다. 가격으로 그림의 가치를 매기는 경매 시스템을 비판하기 위해 뱅크시가 준비한 퍼포먼스였다. 이날 소더비가 발표한 입장은 미술계와 대중이 느낀 신선한 충격을 잘 드러낸다. “우리는 뱅크시당했다(We’ve been Banksy-ed).”

뱅크시는 전 세계에 그라피티 벽화를 남기고 유명 미술관에 작품을 몰래 걸어두는 등 파격적인 퍼포먼스로 유명한 세계적인 예술가다. 그의 작품은 경매에 나왔다 하면 수십억원 이상에 팔려나간다. 하지만 뱅크시가 활동을 시작한 지 30년이 넘었는데도 그에 대한 정보는 전무한 실정이다. 최고의 뱅크시 전문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저명 언론인 윌 엘즈워스 존스가 《뱅크시:벽 뒤의 남자》를 쓴 이유다.

저자는 직접 추적한 뱅크시의 각종 행적을 생생하게 풀어낸다. 저자가 과거 뱅크시와 일했던 동료 등을 만나 취재한 내용에 따르면, 그는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 고등교육을 받은 인물이다. 뱅크시가 가진 하층계급 출신의 반항아 이미지는 그라피티 예술가로서 명성을 얻기 위해 연출됐다는 설명이다.

뱅크시는 자신을 홍보하기 위해 홍보대행사를 쓰면서도 익명성을 유지하는 데 철저한 노력을 기울인다. 자신의 정체를 알아내려는 이들을 막기 위해 변호사를 고용하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엄격한 비밀 유지 서약을 요구한다. 그렇다고 그의 작품을 폄하할 필요는 없다는 게 저자의 견해다. “익명성을 유지하는 것도 뱅크시가 펼치는 예술의 일부다.”

여러 인터뷰와 주변 증언을 통해 뱅크시의 예술철학을 재구성한 대목도 흥미롭다. 뱅크시의 이 말에서 그의 작품이 쉽고 직관적이면서도 더없이 강렬한 이유를 엿볼 수 있다. “많은 비평가가 검증이나 해석이 필요 없는 예술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설명하거나 맥락에 끼워 넣을 필요가 없는 작품은 평론가들의 일자리를 빼앗을 테니까요. 저는 이해하기 쉬우면 예술이 아니라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어요.”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