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식 강한 인재 뽑고 임용 후에도 실효적 재교육 필요
"위급상황서 물리력 사용 위축"…일선에선 어려움 호소도
잘 뽑고 잘 키우기…'현장대응 부실'이 경찰에 남긴 과제
인천 '층간소음 흉기난동' 사건을 둘러싼 경찰의 부실 대응 논란이 사그라지지 않는 가운데 경찰관 채용과 교육 시스템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사건 당시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 중 1명이 여경이라는 이유로 '젠더 이슈'로까지 번지는 형국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의 본질은 경찰관 성별이 아니며, 현장에서 경찰관들의 대응력을 어떻게 강화할지에 대한 논의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과 일선 경찰관들의 견해다.

잘 뽑고 잘 키우기…'현장대응 부실'이 경찰에 남긴 과제
◇ '사명감 부족' 내부서도 지적…"직무적합도 따져보고 임용해야"
"여성이어서가 아니라, 출동 나갔으면 적절한 조치를 했어야 하는데 사명감이 부족했던 거죠."
인천 사건으로 신임 순경이 지탄을 받는 상황을 안타까워하던 한 30대 경찰관이 한 말이다.

신임 경찰관 채용은 공무원 공채시험의 한 종류다.

경찰관 업무 특성상 체력시험이라는 평가가 전형의 일정 비율을 차지하지만, 복수 과목에 대해 필기시험을 치르고 면접을 거치는 등 과정은 공무원 시험과 같다.

흔히 경찰관은 소방공무원이나 군인과 마찬가지로 물리력을 사용하는 직군으로 분류된다는 점에서 신체 능력의 중요도가 크게 부각되곤 한다.

그러나 필기시험의 필요성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

경찰 업무는 지구대·파출소나 형사 등 실제로 물리력을 사용하는 부서 외에도 다양한 영역에 걸쳐 있고, 법 집행기관 특성상 각종 법령을 다룰 일이 많다.

현행 경찰공무원 채용 필기시험은 한국사와 영어를 필수과목으로 두고 형법·형사소송법·경찰학개론·국어·수학·사회·과학 중 3과목을 선택하는 방식이다.

내년부터는 필기시험 과목이 헌법·형사법·경찰학으로 개편되고, 영어와 한국사는 검정시험으로 대체한다.

잘 뽑고 잘 키우기…'현장대응 부실'이 경찰에 남긴 과제
이 때문에 대학입시나 여타 공무원 공채와 마찬가지로 경찰 채용 필기시험에 변동이 생기는지가 노량진 학원가 등에서는 큰 관심사가 돼 왔다.

다만 일각에서는 경찰관으로서 국민을 보호한다는 직업의식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공무원 시험 합격 요령만 습득한 이른바 '시험 선수'들이 합격하기 쉬운 조건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인천 사건 역시 현장에 끝까지 남아 가해자를 막겠다는 사명감이 부족해 벌어진 일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시험을 봐서 먼저 뽑아놓고 이후에 교육하는 방식이 아니라 일정 기간 교육훈련을 통과한 사람만 임용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며 "지금 경찰관 채용시스템은 직무 적합도나 업무 수행능력과는 관계가 없다는 점에서 문제"라고 말했다.

일선 경찰관들의 현장 대응 문제가 불거질 때면 체력이 도마 위에 오르는 경우도 많다.

범법자 제압 등 물리력을 행사해야 할 일이 많고, 그 기초가 되는 것이 신체 능력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경찰대 입시나 신임 경찰관 채용시험에도 체력검사가 포함된다.

학계와 경찰 등에 따르면 한국 경찰에는 1993년까지 채용 과정에서 체력검사 자체가 없었다.

필기시험만으로 경찰관을 선발하다 1993년 경찰공무원 임용령 개정과 함께 처음 체력검사가 도입됐다.

체력검사 도입 초기에는 전체 시험에서 반영 비율이 5%로 낮았다.

그러다 2004년 10%, 2012년에는 현재 기준인 25%까지 커지면서 필기시험 비중은 50%까지 낮아졌다.

경찰 업무를 수행하기에 체력조건이 부족한 응시자도 필기시험 성적만으로 합격하는 문제점이 있다는 지적에 따른 조치였다.

체력검사 기준은 신체능력 특성을 고려해 여성이 남성보다 다소 낮았다.

그런 가운데 현 정부 들어 여경 비율을 높이고, 남녀 분리모집 폐지가 추진되자 현장 치안력 약화를 막으려면 여성 지원자에 대한 체력 기준을 높이거나 남녀 동등한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는 여론이 꾸준히 이어졌다.

실제로 경찰청은 외국 경찰 사례 등을 검토한 뒤 남녀 지원자에게 동일한 방식의 체력검사 방안을 마련해 오는 2026년 전면 시행할 계획이다.

달리기,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 등 기존의 기초체력 중심 종목이 아니라 경찰 업무 성격을 고려한 ▲ 장애물 코스 달리기 ▲ 장대 허들넘기 ▲ 밀기·당기기 ▲ 구조하기 ▲ 방아쇠 당기기 등 5개 코스를 4.2㎏짜리 조끼를 착용한 상태로 기준시간 내에 통과하면 합격하는 방식이다.

다만 이번 사건을 두고 여경의 체력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시각이 많다.

서울의 한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남성 경찰관은 "현장을 이탈한 행위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지만, 정말 고도로 단련된 신체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남경이라 해도 갑자기 좁은 공간에서 흉기를 들고 달려드는 상황에서 당황하기는 매한가지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잘 뽑고 잘 키우기…'현장대응 부실'이 경찰에 남긴 과제
◇ "조직이 책임도 안 져주는데"…일선에선 현실적 어려움 호소
경찰 내부에서는 이번 사건을 두고 "잘못한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현장에서 오랫동안 지적돼 온 문제들이 다시 수면으로 떠 오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 임용 후 현장 대응력을 키우기 위한 재교육이 유명무실한 점이 이번 사건의 한 원인이라는 의견도 있다.

코로나19 사태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당시 현장에 출동한 순경은 지구대 배치 이후 매달 2시간씩 할당된 체포술, 사격술, 테이저건 사용법 등 물리력 대응훈련을 모두 인터넷으로 받았다.

일선 시도경찰청에서 근무하는 한 경찰관은 "권총 사격연습은 실제로 급박한 현장 상황에 대응하는 연습이 아니라, 이전까지는 인사고과 점수 채우기 용도로 활용하다 보니 실효성이 없었고, 무도훈련도 직장훈련 점수를 딸 목적인 경우가 많아 도움이 안 된다"며 "실질적인 현장 대응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장 경찰관들은 위급한 상황에서 테이저건 등 범죄 진압용 장구나 총기를 적극 사용하는 것을 꺼리게 하는 현실도 거듭 지적한다.

지구대 근무 경험이 있는 한 경찰관은 "흉기를 든 사람에게는 테이저건을 적극 사용하라는 등 매뉴얼이 있으면 인천 여경이 과연 자리를 떴겠나 싶은 생각이 든다"며 "만약 현장에서 권총을 사용했는데 피혐의자가 잘못되면 경찰 조직이 그걸 책임져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 경찰 간부도 "흉기를 든 사람을 맞닥뜨리는 상황이란 게 그리 흔하지는 않고, 짧은 순간에 판단해서 대응해야 하는 일"이라며 "현장 경찰관에게 물리력 사용을 위한 판단의 재량을 주고 면책규정도 제도화해 눈앞에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총기나 진압장구 등을 사용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