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3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국책연구원에서 정년연장 논의를 본격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한국노동연구원 개원 33주년 기념세미나에서입니다. 정치권 일각에서 '주4일제' 도입을 공약으로 내세운 가운데 정년연장론까지 나오면서 가뜩이나 공고해진 기존 노동시장의 울타리만 높아지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한국노동연구원은 지난 11일 전국은행연합회관에서 개원 33주년 기념세미나를 열었습니다. 디지털화, 탈탄소화, 인구구조 변화 등 급격한 경제사회 환경 변화 속에 우리 사회의 모든 일하는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는 노동정책의 길을 모색하자는 취지였습니다.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의 기조강연(전환시대의 일의 세계:인간 중심의 접근)으로 시작한 이 세미나에서 단연 눈에 띄는 발표는 안주엽 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인구구조 변화와 노동시장'이었습니다.

안 선임연구위원은 청년층과 중년층 비율이 줄고 장년층 비율은 늘어나는 고령화 시대에 노동공급 제약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경제활동참가율을 높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장년층 인력의 효율적 활용을 위해 생애노동의 시각에서 생애노동시간의 재설계가 필요하다"며 "국민연금 수급 개시와 부함하는 정년연장(정년폐지)의 합리적 적용방안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안 선임연구위원은 주장의 근거로 15세 이상 경제활동인구는 2026년, 15~64세 경활인구는 2023년 감소 추세로 전환이 예상되고, 경제활동참가율 또한 2023년을 정점(63.7%)으로 이후 하락해 2030년 62.3%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노동력 부족 문제 해소 방안으로 정년연장 외에 고학력화 청년의 대기업 지향성 및 중소기업 인력난 완화를 통한 청년고용 제고와 함께 장기적 관점에서 노동시장 이중구조 완화를 위한 적극적 논의도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러한 주장에 대해 정년연장과 청년고용 제고는 양립하기 어려운 과제인데다, 자칫 정년연장은 기존 노동시장 울타리 안에 들어와있는 근로자들, 구체적으로는 정규직 기득권의 보호막만 두텁게 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의 공약인 주4일제 이슈 역시 같은 맥락에서 봐야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가깝게는 2017년 근로자들에게 '저녁이 있는 삶'을 선사하겠다며 전격 시행된 주52시간제는 고임금 정규직 근로자들만 혜택을 보고 대다수의 근로자들은 '저녁시간은 있지만 저녁 먹을 돈은 없게 만들었다'는 비판과 맥이 닿아있는 얘기입니다.

물론 대선 정국인 점을 감안하면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한 환심성 주장에 가까운 이야기지만 현실화 땐 후폭풍이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지금은 민간기업에서 일하는 한 전직 고위공무원의 이야기입니다. "대선판이라고는 하지만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도, 정치의 수준을 고려하면 언제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주52시간제, 정년 60세 연장 등 과거 사례를 비춰보면 어느 순간 논의가 급물살을 타 어느 순간 현실화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죠."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