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인종 마블 히어로들이 이끄는 오락영화의 진수 '이터널스'
자로 잰 듯한 '정치적 올바름'이다.

마블 블록버스터 신작 '이터널스' 히어로들은 인종과 성별, 연령 등이 모두 다르다.

기존 슈퍼히어로물에서는 많아야 1명 정도의 비백인 멤버가 있어 마지못해 한 명 끼워 넣었다는 인상을 주지만, '이터널스'는 계층을 대표하는 인물을 두루 히어로로 내세웠다.

'노매드랜드'로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동시에 거머쥔 클로이 자오 감독이 연출을 맡아 한 단계 진일보한 히어로 영화를 만들어냈다.

영화는 수천 년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살아온 히어로 집단 이터널스가 인류의 적 '데비안츠'를 처치하기 위해 다시 힘을 합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인간을 잡아먹는 괴생물체 데비안츠들은 약 500년 전 궤멸했으나 이터널스 멤버 세르시(젬마 찬)와 스프라이트(리아 맥휴)에 의해 다시 발견된다.

세르시는 박물관에서 일하며 남자친구 데인(키트 해링턴)과 보내던 평범한 일상을 포기하고 나머지 멤버들을 찾아 나선다.

이 과정에서 자신을 버린 연인이자 이터널스의 리더 역할을 해온 이카리스(리처드 매든)와도 재회하게 된다.

테나(앤젤리나 졸리), 길가메시(마동석), 킨고(쿠마일 난지 아니), 드루이그(베리 케오건) 등도 하나둘씩 팀에 합류한다.

이들이 지닌 능력에서도 영화가 내세우는 '다양성'과 '연대'라는 메시지가 엿보인다.

이터널스들이 각기 보유한 초능력은 그 자체로 완벽하지 않다.

그러나 저마다의 약점을 다른 멤버가 이를 보완하며 '어벤져스'에 버금가는 호흡을 보여준다.

이런 액션 티키타카는 마블 영화를 찾는 관객들을 충분히 만족시킬 것 같다.

영화는 약 2시간 40분 동안 거의 쉴 틈 없이 몰아치며 액션 장면을 선보인다.

특히 데비안츠를 향해 길가메시표 '불주먹'을 먹이는 마동석의 연기는 특유의 찰진 한국어 욕 없이도 시원스럽기 그지없다.

다인종 마블 히어로들이 이끄는 오락영화의 진수 '이터널스'
컴퓨터 그래픽(CG) 등 각종 기술력과 로케이션 촬영으로 만들어진 영상은 극장에서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는 이유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개연성을 따지거나 유치함을 느낄 틈이 없도록 화려하고 거대한 스케일이 시선을 뺏는다.

기원전 7000년 메소포타미아에서 출발해 기원전 575년 바빌론, 400년 굽타, 1500년 테노치티틀란, 1945년 히로시마까지 지구 곳곳의 과거 모습도 재현해내며 오락영화의 진수를 보여준다.

캐릭터 또한 입체적이라 스토리가 어떻게 전개될지 종잡을 수 없다.

선한 역이라 생각했던 인물이 배신을 일삼고, 악역이라 생각했던 인물은 마지막까지 의리를 지킨다.

조연 역할에 그칠 줄 알았던 데인은 극 종반부 결정적인 키를 쥔 인물로 그려지며 속편을 예고한다.

또 눈여겨봐야 할 점은 이 영화가 인종·연령·성별의 다양성을 꾀했을 뿐만 아니라, 이전까지 히어로물에서 좀처럼 시도하지 않았던 '소수자성'에 주목했다는 사실이다.

흑인 남성 파스토스(브라이언 타이리 헨리)는 남편과 함께 입양한 아들까지 둔 동성애자고 마카리(로런 리들로프)는 청각장애를 가졌다.

사회 통념상 사회적 약자로 꼽히는 인물들이 지구를 구하는 슈퍼히어로단 일원으로 나오는 것이다.

천재성을 발휘하는 흑인, 엄청난 근력을 지닌 동양인 남성, 리더 역할을 부여받게 되는 동양인 여성이라는 캐릭터 설정도 편견을 깨부수기 위한 시도처럼 보인다.

물론 이런 시도가 다소 작위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작은 시도들이 하나씩 쌓여 영화계, 나아가 사회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마블이 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인 것 같다.

11월 3일 개봉.
다인종 마블 히어로들이 이끄는 오락영화의 진수 '이터널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