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태 칼럼] 경제 대통령 기대, 또 접어야 하나
2017년 대선 당시 관훈클럽 주최 유승민 후보 초청 토론회에 패널로 참석한 적이 있다. 경제분야 검증을 맡아 질문을 던졌는데, 경제학 박사 출신인 해박한 유 후보의 허점을 공략하기 위해 며칠 전부터 머리를 싸매고 공부했다.

하지만 고백하자면 토론회에서 나는 유 후보에게 완패했다.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고는 던졌으나, 그는 모든 질문에 완벽한 논리로 방어했고, 민감한 문제에는 얄미울 정도로 요리조리 피해갔다. 토론회가 끝나고 패널단 평가에서 콘텐츠로만 따지면 압도적 1위 대통령감이라는 얘기가 오갔다. 당시 청중석에 있던 언론계 출신 원로 선배는 전혀 다른 평가를 내렸다. 그의 한마디는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똑똑하면 뭐해. 매력이 없는 걸….”

그런 유 후보가 다시 대선 주자로 나섰다. 던지는 슬로건과 디테일한 공약은 5년 전보다 더 탄탄해 보인다. 여권 주자인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야권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 유승민을 꼽은 것도, 그가 후보 경쟁력 자체로는 최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유권자들한테 매력이 없다.

지난 1년간 뜸을 한참 들이다 결국 대권도전을 택한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이론에다 현실 경험까지, 경제 대통령감으로 이만한 주자가 없다. 최근 펴낸 《대한민국 금기깨기》 책을 보면 대한민국의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한 정책적 지향점과 그걸 이뤄낼 온갖 방책들이 가득하다. 40년 전문관료 출신에다 그만이 갖고 있는 내공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 역시 현실 정치의 벽을 몸소 체득하고 있을 거다. 낡은 ‘진영 정치’를 깨겠다며 출사표를 던지자마자 터진 초대형 정치 이슈들에 묻혀 김동연이란 존재감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그가 책에 썼듯이 비전과 아젠다는 없고 인물 위주의 이미지 정치가 지배하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사실 경제 전문가라는 관료들이 정치에 도전해 성공한 적이 얼마나 있었나. 대부분 계란으로 바위치기 하다 끝났다. 장관 세 번에 3선 국회의원까지 누렸던 강봉균 전 부총리. 몇 년 전 타계했을 때 상가에서 현직 장관 후배가 “몸에 안 맞는 옷을 입고 분투하시더니 결국 암으로 가셨다”고 안타까워한 얘길 듣고 관료의 한계를 얼핏 짐작했다.

혹자는 대통령이 모든 걸 알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만기친람보다는 전문가를 적재적소에 잘 써 믿고 맡기는 게 중요하다는 논리다. 과거에 그런 케이스가 있긴 했다. 박정희 때의 남덕우, 전두환 때의 김재익 등이 그런 사례로 인용된다.

하지만 그때는 맞았을지 몰라도 지금은 아니다. 내년 봄 어느 정권이 등장하더라도 쓸 만한 인재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일 것이다. 청문회, 재취업 제한 등 제도적 장벽도 크지만, 실력 있는 관료들이 컴백을 꺼리는 이유는 따로 있다. 민간으로 간 한 전직 차관 출신 인사는 “국회가 절대권력을 차지해 행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다. 여당이 시키는 일만 해야 하는 마당에 누가 다시 공직에 들어가려 하겠느냐”고 했다.

결국 그 자리는 폴리페서들이 다 차지할 것이다. 여당 최고 유력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의 캠프만 해도 그렇다. 아는 관료나 저명한 경제학자 중 이재명 캠프에 가담한 인사는 찾아보지 못했다. 간혹 제안을 받은 경우가 있다고 들었지만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고 한다.

이들 대신 캠프 핵심에는 이재명의 ‘기본 시리즈’ 공약을 설계한 이한주 전 경기연구원장, 중앙은행의 무한 발권력 동원을 주장해온 최배근 건국대 교수 같은 사람들이 포진해 있다. 이재명 정권이 탄생하면 이들이 대거 정책 참모로 기용될 게 뻔하다. 대한민국을 검증 안 된 이론의 실험 대상으로 삼다가 경제를 망친 ‘장하성-홍장표’의 전철을 다음 정권 5년간 또다시 밟는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