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창업·벤처인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코로나 위기 속에도 ‘제2 벤처붐’을 일궈냈다며 격려하고,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정부 관련 부처들도 이에 맞춰 제2 벤처붐을 공고히 하겠다며 ‘글로벌 4대 벤처강국 도약을 위한 보완 대책’을 마련해 발표했다.

벤처 인재와 자본이 잘 유입되도록 제도 개선에 고삐를 죄겠다는 정부 방침은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대통령부터 한목소리로 제2 벤처붐을 기정사실화한 점에선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정부는 작년 벤처 투자액(4조3000억원) 등 지표가 역대 최대를 기록했고, 벤처 총고용도 1년 전보다 6만7000명 증가했다고 강조했다. 기술력 하나만 보고 증시 입성 기회를 주는 기술특례상장도 2017년부터 4년간 77건에 달해 직전 4년(28개)에 비해 2.8배 늘었다고 했다.

외형상 지표는 좋아진 것 같지만, 올 들어 세계적으로 신규 유니콘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스타트업)이 291개 생겨나는 동안 한국에선 단 한 곳밖에 나오지 않았다는 조사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388개), 중국(157개), 인도(36개) 등과 비교해 현저히 적은 유니콘 수 격차(한국 11개)가 더 벌어질 판이다. AI(인공지능)와 소프트웨어 분야에선 한국 유니콘이 전무하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대한민국은 추격의 시대를 넘어 추월의 시대를 맞고 있다”고 장밋빛 청사진만 그렸다.

정부 보완책에는 스톡옵션 비과세 한도 증액(현행 3000만원→5000만원), 벤처특별법 일몰(2027년 예정) 폐지, 인수합병(M&A) 벤처펀드 2배 확대 등이 다양하게 담겼다. 그러나 초점을 놓치고 있다는 게 문제다. 스타트업의 덩치를 키우려면 M&A에 나설 대기업 참여가 필수적인데, 그런 규제완화 언급이 없다.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CVC) 설립의 자율성 확대, 부채비율 상향 등 업계의 규제완화 건의도 들은 체 만 체다.

이래선 제2 벤처붐 싹이 움트기는커녕 고사되는 길을 걸을 위험성이 크다. 왜 세계 스타트업 투자의 72.9%가 미국과 중국에 몰리고, 한국엔 1.5%밖에 찾지 않는지 이유를 돌아봐야 한다. 기업 규제를 거꾸로 강화하는 한국 벤처시장에 해외 자본과 인재가 관심을 가질 리 없다. 이제라도 자유로운 벤처투자시장으로 변모시키는 데 정책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