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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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에 근대5종 국가대표 전웅태(26·사진)가 모습을 드러내자 수백 대의 카메라 플래시가 그를 감쌌다. 근대5종은 펜싱, 수영, 승마, 육상, 사격(레이저런) 등 다섯 가지를 모두 잘해야 하는 종목이다. 2020 도쿄올림픽 전까진 이름조차 생소했던 이 종목에서 전웅태는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지난 5년간 흘린 피와 땀의 결실이었다.

전웅태는 이제 전 국민이 아는 ‘슈퍼스타’다. 올림픽 전 한 방송에 나와 “근대5종을 사람들이 잘 모른다”고 걱정한 건 옛이야기가 됐다. 12일 전화로 만난 그는 “수천 개의 축하 메시지에 답하느라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도쿄에선 SNS로만 응원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귀국하니 몇백 통도 아니고 몇천 통의 축하 메시지가 와 있네요. 혼인신고서를 들고 와 ‘남편 서명란’에 사인을 요청하는 팬을 보고 ‘진짜 메달을 땄구나’ 실감했습니다. 함께 있던 가족들과 얼마나 웃었는지 모르겠어요.”

전웅태는 지난 7일 도쿄 대회 근대5종 개인전에서 5개 종목 합계 1470점을 얻어 조지프 충(영국·1482점), 아메드 엘겐디(이집트·1477점)에 이어 3위에 올라 동메달을 획득했다. 한국은 1964년 도쿄올림픽 때 처음 근대5종 선수를 파견했고, 다시 열린 도쿄 대회에서 57년 만에 메달을 획득했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도시소년’인 그는 올림픽 메달이라는 목표 하나만으로 국군체육부대가 있는 경북 문경 외진 산골에서 지난 5년을 보냈다. 오전 6시에 시작해 잠들기 전까지 15시간 동안 이어지는 훈련 프로그램으로 하루를 채웠다. 듣기만 해도 땀이 맺히는 극한 훈련을 소화한 그조차도 이번 올림픽에서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다고 했다.

“(800m 네 바퀴를 돌면서 사격하는) 레이저런 세 번째 바퀴쯤 엘겐디 선수와 얀 쿱 선수(체코)가 갑자기 제 앞으로 치고 나갔어요. 쿱은 원래 사격에서 흔들리는 선수인데 그날따라 잘 맞히길래 정말 힘이 빠졌습니다. 공기도 무거웠고 몸에 힘이 들어갔어요. ‘조금만 버티면 역사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버텼습니다. 뒤에서 따라오는 (정)진하 형을 봐서라도 여기서 멈출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위기는 또 있었다. 제비뽑기로 말을 고르는 승마에서 그는 앞선 경기에서 과테말라 선수를 낙마시켰던 말을 배정받았다. 낙마 사고로 팔 수술까지 해본 그로선 덜컥 겁이 날 수밖에 없는 상황. “그 친구(말)를 쓰다듬으면서 ‘잘 부탁한다’고 몇 번이나 되뇌었어요. 사람이 뜀틀을 넘다 넘어지면 공포심이 생기잖아요. 말도 똑같거든요. 겁을 먹고 장애물 넘기를 거부하기도 하는데, 다행히 그 친구가 잘 뛰어줬고 좋은 성적(11위)을 낼 수 있었죠.”

근대5종을 알리는 1차 목표를 달성한 그의 눈은 2024 파리올림픽을 향해 있다. “이번에는 동메달을 땄으니 앞으로는 ‘은’과 ‘금’이 남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저랑 진화 형은 후배들이 나아가야 할 길을 만든 것 같아요. 이제 우리를 본 미래의 후배들이 근대5종의 매력을 깨닫고 도전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저희도 멈추지 않고 달릴 예정이에요. 30대 초·중반에도 메달을 딸 수 있는 종목이니까요. 다가오는 파리 대회까지 경쟁자들보다 뒤처지는 레이저런 성적을 끌어올려 동메달보다 더 좋은 성적을 내고 싶습니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