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콜로라도 규제가 불러온 기현상
미국의 대형 제약회사인 존슨앤드존슨은 올해 상반기 직원 신규 채용 때 50개 주 가운데 단 한 곳에서만 공고를 내지 않았다. 중서부의 거점 도시 덴버를 끼고 있는 콜로라도주다. 이 회사는 재무 및 영업부문 관리자를 뽑는 최근 온라인 공고에 “미국 어디에서든 유연 근무가 가능하다”면서도 “단 콜로라도에선 원격 근무도 허용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 존슨앤드존슨이 시대착오적인 지역 차별 업체인 걸까?

비단 존슨앤드존슨만이 아니다. 상업용 부동산 중개업체인 CBRE그룹과 제약 유통업체 매케슨, 헬스케어 기업 카디널헬스 등 상당수 기업들도 채용 문구에 비슷한 내용을 적었다는 게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다. 예컨대 카디널헬스는 ‘재택 근무가 가능한 회계직’을 뽑으면서 “콜로라도주 내 근무 희망자는 지원하지 말라”고 했다.

[특파원 칼럼] 콜로라도 규제가 불러온 기현상
이런 황당한 차별의 원인은 콜로라도주가 올해 1월부터 시행한 새로운 규제에 있다.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는 주의회는 지난해 모든 기업의 신규 채용 공고에 보수와 복지 혜택 등을 적시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원칙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다. 채용 공고 때부터 급여를 투명하게 공개하면 성별에 따른 임금 격차를 좁힐 수 있을 것이란 미국여성법센터 조언이 이 법안을 만드는 데 영향을 미쳤다.

여성법센터는 2019년 기준으로 기업들의 임금 현황을 집중 연구했다고 한다. 그 결과 비슷한 업무를 하는 정규직이라도 남성이 1달러를 벌 때 여성들은 82.3센트만 받고 있다는 게 확인됐다. 여성법센터는 일종의 성차별이라고 주장했다.

주의회는 관련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컨설팅업체 맥킨지의 다른 연구도 참고했다. 여성들이 남성보다 더 빈번하게 승진 및 연봉 협상에 나서고 있지만 실제로는 손해를 많이 보고 있다는 내용이다. 협상에 적극적인 여성들은 ‘너무 공격적’이라거나 ‘자기주장이 강하다’는 평판을 남성보다 30%가량 더 얻는다고 한다.

입사 지원자들이 면접을 보기도 전에 회사를 상대로 “내 연봉이 얼마냐”고 묻는 게 곤란하다는 점도 주의회를 움직인 배경 중 하나로 꼽힌다. 의회는 “기업 연봉을 알려준다는 웹사이트가 있지만 개인별 보수 내역이 제각각인 데다 정확하지도 않다”고 했다.

이처럼 주의회가 새 법안을 내놓을 때의 명분은 그럴듯했다. 하지만 유탄이 엉뚱한 곳으로 튀고 있다. 기업들이 콜로라도에선 아예 채용 자체를 기피하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이곳 주민들은 기꺼이 정확한 급여 내역을 밝히겠다는 일부 회사에만 지원할 수 있다.

기업들이 새 법에 반발하고 나선 건 ‘도를 넘은 규제’라는 판단에서다. 채용 대상자의 경력이나 능력을 고려해 연봉 협상을 하는 기존 관행과 어긋난다는 게 재계의 지적이다. 주 내 경제단체인 로키마운틴채용협회가 지역 법원에 보수 공개 규제를 막아달라며 가처분 신청을 낸 배경이다.

주민들이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민원이 속출하는데도 콜로라도주는 법안을 재검토하지 않고 오히려 기업 압박에 나서 뒷말을 낳고 있다. 주 노동부는 ‘차별적 공고’를 실은 일부 기업을 상대로 내부 조사에 들어갔다.

연방 실업수당을 놓고서도 콜로라도는 유타 애리조나 네브래스카 와이오밍 등 인접 주와 다른 결정을 내렸다. 이웃 주들이 주당 300달러씩 더 얹어주는 추가 실업급여가 고용 정상화를 막고 있다고 판단해 조기 종료를 결정했지만 콜로라도는 끝까지 유지하기로 했다. 콜로라도식당협회(CRA)의 조사 결과 90%가 넘는 회원사들이 신규 채용에 애를 먹고 있고, 그중 65%는 “인력 수급을 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 추가 실업수당”이라고 하소연했지만 요지부동이다.

콜로라도의 다양한 일자리 실험은 전혀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고용 성적표는 하위권이다. 지난 6월 기준 실업률이 6.2%로, 전체 평균(5.9%)을 밑도는 건 물론 50개 주 가운데 15번째로 높았다.

도입 취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나쁜 규제는 한국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작년 7월 시행된 ‘임대차 3법’이 대표적이다. 세입자의 주거 안정을 꾀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결과적으로 세입자들만 거리로 내몰렸다는 비판이 많다. 절박한 심정의 구직자와 세입자들은 다시 묻고 있다. 새로운 규제는 진짜 누구를 위한 것이냐고.

美 경제·통화정책을 좌우하는 건 일자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정책은 ‘일자리 계획’(American Jobs Plan)이다. 모두 2조2500억달러 규모다. 지난해 대선 캠페인 때부터 미국산 제품을 구매해야 한다는 ‘바이 아메리칸’ 구호를 외쳐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제조업 부문의 일자리 복구를 최우선으로 챙겨왔다. 5일 백악관에서 2030년까지 미국 내 판매 차량의 절반을 친환경차로 채우겠다는 청사진을 내놓은 것도 같은 배경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중산층 성장을 지탱해줄 일자리가 여기에 있다”며 “질 좋은 일자리를 미국 안에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 중앙은행(Fed) 통화정책의 핵심도 일자리 창출이다. Fed는 고용시장이 정상화되지 않으면 지금의 통화 완화 기조를 바꾸지 않겠다고 했다. 고용이 뚜렷한 회복세를 보여야 긴축 단계를 밟아나갈 것이란 얘기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은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통화정책을 정상화하려면 반드시 고용지표의 회복세를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욕증시가 매달 공개되는 고용 성적표에 큰 영향을 받는 것도 일자리가 미국의 경제·통화정책을 움직이는 핵심 변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