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소비자들이 장을 보고 있다. 김병언 기자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소비자들이 장을 보고 있다. 김병언 기자
7월 소비자물가가 2.6% 급등했다. 4개월 연속 2%대 고공비행이다. 9년 1개월 만의 최고였던지난 5월(2.6%)과 같은 상승률이다.

장바구니 물가는 비명이 나올 정도다. 계란 값은 1년 만에 57% 급등했다. 채소는 더 가파르다. 최근 한달 사이 시금치는 177% 폭등했고, 배추 부추 양배추도 일제히 50% 넘게 올랐다. 실한 수박은 1통에 3~4만원을 오르내린다.

물가보다 더 걱정스러운 건 물가를 대하는 정부의 안이한 태도다. 통계청은 7월 물가 급등사실을 발표한 뒤 "폭염 등 날씨 요인이 일시적으로 상승율을 높였다"며 시큰둥했다. "하반기엔 상승률이 진정될 것"이라는 기존 입장도 재확인했다.

선뜻 납득하기 힘든 설명이다. 물가는 폭염과 거리가 먼 지난 4월 부터 4개월 연속 2% 이상 뛰었다. 대표적 상승 품목인 계란 값이 오르기 시작한 것도 2월부터다. 날씨 때문이 아니라 수급 조절 실패의 결과였다. 작년 11월 조류인플루엔자(AI) 발생 당시 "선제적 차단"이라며 발생 농가 반경 500m이던 살처분 범위를 3㎞로 크게 확대한 뒤 공급대책을 등한시해 자초한 일이다.

정부의 날씨 타령은 이번 만이 아니다. 나쁜 경제지표가 나올 때마다 기상을 원흉으로 꼽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1~2주전 블랙아웃 위기가 고조됐을 때도 정부는 유난스런 폭염을 탓했다. '묻지마 탈원전'으로 에너지 수급이 불안정해진 근본 요인은 외면했다. 이대로라면 위기가 매년 반복될 수 밖는 구조인데도 재발방지책을 찾기보다 폭염을 탓하며 공공기관 에어콘 사용제한으로 대처했다. 연초 중국발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렸을 때 "중국발(發)이라는 근거는 없다"며 한반도 상공의 대기정체를 탓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고용참사까지 날씨 탓으로 돌리는 기적의 논리도 선보였다. 올 1월 취업자 감소폭이 98만 2000명으로 외환위기 때인 1998년 12월 이후 최대를 기록하자 폭설 등으로 외부활동이 줄어든 결과라고 진단내렸다. 연초에 새해 예산이 미처 집행되지 못해 알바성 일자리가 잠시 끊긴 것이 주요 요인이었지만, 그보다는 부차적 이유를 앞세운 것이다. 공공일자리 만들기로 연명해온 부실 고용정책의 폐해를 기상 탓으로 돌리는 무책임한 행태다. 정부는 지금도 공공알바를 일자리 정책의 핵심에 두고 숫자놀음중이다. 일자리 몇 십만개가 늘었다는 식의 자화자찬도 매달 빼놓지 않는다.

물가 상승의 더 근본적 원인은 정부와 정치권의 돈 뿌리기다. 작년 5월 전 국민에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했을 때도 축산물 가격이 급등했다. 한국은행은 “코로나 위기 대처하느라 늘어난 유동성이 적절한 시점에 회수되지 못할 경우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했다. “각국 정부의 부양책으로 인한 세계적 물가상승 압력이 국내로 전이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내놨다. 이 와중에 사실상 '전국민 지급'이나 마찬가지인 막대한 재난지원금이 또 풀린다.

사정이 이런대도 경제팀은 언제나 날씨 핑계부터 댄다. 그러면서 자화자찬거리 찾기에 혈안이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기막힌 행보다.

백광엽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