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중순 예정된 한·미 연합훈련을 두고 여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대한민국 안보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통일부 고위 당국자와 국정원장에 이어 어제는 여당 의원들이 집단으로 훈련 연기를 요구하는 연판장을 돌리고 기자회견까지 했다. 북한 김여정의 훈련 중단 겁박에 앞다퉈 맞장구치는 모양새다.

연판장에는 범여권 의원 74명이 서명했다. 이들은 통신선 복구로 변화 조짐이 생긴 만큼 대화 계기를 만들기 위해 걸림돌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훈련을 실시하면 남북한 관계를 다시 경색시킬 수 있다고 협박한 김여정과 비슷한 논지다. 원하는 것을 얻은 뒤 안면을 싹 바꾸는 북한의 그간 패턴을 보면 훈련 중단 요구를 들어준다 해도 남북한 관계가 진전되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런데도 북한이 일방적으로 끊은 통신선 하나 복구했다고 우리 국민의 안전을 지켜줄 한·미 훈련을 ‘걸림돌’이라며 한낱 흥정거리로 삼은 것은 납득할 수 없다.

국정원장이 “훈련을 하면 북한이 새 도발을 할 것”이라며 연기를 주장한 것도 안보 최전선에 있는 정보수장이 할 말인가 싶다. 북한 도발이 무서워 훈련을 하지 않는다면 군을 군이라고 부를 수 없다. “국정원이 김여정 하명기관으로 전락했다”는 조롱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듯하다. 훈련 연기를 놓고 여당 내에서 자중지란이 벌어지는 것이나, 통신선 복원 주체가 북한인지 여부를 놓고 당국 간 입씨름하는 것을 보면 김여정의 남남갈등 유발 노림수에 꼼짝없이 말려든 것 같다.

사태가 이 지경인데도 대통령은 “한·미 훈련은 여러가지를 고려해 미국과 신중히 협의하라”고 했다.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알 수 없다. 이렇게 북한 눈치를 보니 “김여정이 국군통수권자”(재향군인회)라는 말까지 듣는 것 아닌가. 한·미 훈련은 3년째 컴퓨터 게임으로 전락했고, 북한은 핵·미사일 능력을 키워왔다. 그런데도 이젠 훈련마저 하지 말자고 한다. 군대의 기본인 훈련이 어쩌다 ‘김여정 아첨용’이 돼 버렸나. 지금 시급한 것은 훈련 연기가 아니라 북한에 핵 폐기를 요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