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개월 연속 2%대 고공행진을 벌이는 가운데 연초부터 폭등세인 계란값이 떨어질 기미가 안 보인다. 통상 한 판에 5000원 조금 넘는 수준인 계란값은 올초 7000원을 넘어선 뒤 최근까지도 이 수준에서 요지부동이다. 하루 소비량만 5000만 개에 육박하는 계란은 저렴한 단백질 공급원이자 각종 음식의 필수 재료인 만큼 가격 안정은 매우 중요하다.

문제는 계란값 폭등의 원인을 정부가 제공했다는 점이다. 지난해 말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하자 정부는 선제적 대응을 한다며 산란계의 거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23%(1700만 마리)를 살처분했다. 코로나에 AI까지 창궐할 것을 우려한 탓이겠지만 과잉 살처분으로 계란 공급이 급감하면서 가격이 폭등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다급해진 정부는 상반기에 이어 하반기에도 계란 2억 개를 수입할 계획이지만 국내 소비량 기준 4.5일치 정도에 불과해 당분간 가격이 내리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더욱 어처구니없는 것은 정부가 계란 파동의 책임을 슬그머니 남 탓으로 돌리려 든다는 점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어제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관계자에게 “계란값이 조속히 6000원대로 인하될 수 있도록 특단의 각오로 대응해 달라”고 주문했다. 앞서 지난달엔 문재인 대통령이 “생산 유통 판매 단계를 점검하고 수입 계란의 충분한 확보를 특별하게 살피라”고 지시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에 부응하듯, 계란 생산·유통 사업자단체 등에 “담합하면 처벌받을 수 있다”는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정부의 과잉 살처분과 턱없이 부족한 수입량이 폭등 원인인데 마치 생산·유통업자 때문에 계란값이 오르는 것처럼 호도한 것이다. 잘못된 부동산 정책으로 집값을 폭등시켜 놓고 ‘투기세력’ 탓하는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계란 같은 축산품 가격 역시 기본적으로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부의 시장 개입은 긴급하고 필요한 때 한해 제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스스로 시장을 교란시켜 놓고 사후 시장 정상화도 제대로 못한 채 ‘특단의 각오’ 운운하며 엉뚱한 소리만 해대고 있다.

지난 7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대비 2.6% 올랐다. 농축수산물 가격은 3.8%, 장바구니 물가인 생활물가지수는 3.4% 올라 상승폭이 더 컸다. 계란값 안정도 제대로 못 시키는 정부가 몰려오는 인플레이션에 어떻게 대처할지 걱정부터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