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전기차 판매가 급증하고 있지만 정부 보조금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서 장기적인 전기차 보급 확대에는 한계가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8일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지난해 유럽의 세계 전기차 판매 시장 점유율은 43%로 2019년보다 두 배 가까이 커졌다. 반면 세계 주요 자동차 시장인 중국과 미국은 점유율이 줄었다. 지난해 유럽 시장에 출시된 신형 전기차 모델은 65개로 중국의 2배 규모다. 올해에는 유럽 시장에 99개의 신형 전기차 모델이 쏟아져 나온다. 북미 시장의 경우 지난해 15개 신형 전기차가 출시됐고, 올해에는 64개 모델이 나온다.

하지만 유럽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는 각국 정부의 인센티브 정책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정부 보조금이 사라지면 성장세는 얼마든지 뒤집힐 수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유럽 각국의 정부들이 운영 중인 전기차 보조금 정책 대부분은 올해 말 만료될 예정이다.

아른트 엘링호스트 번스타인 리서치 자동차 시장 애널리스트는 "전기차 시장은 정부 보조금과 회사의 할인 정책에 매우 민감하다"며 "보조금이 없다고 가정하면 전기차 판매는 올해 1·2분기에 30~40% 정도 붕괴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기차 보조금이 없다면 전기차는 여전히 동등한 수준의 내연기관 차량보다 훨씬 비싸다. 새로운 기술의 등장, 규모의 경제, 치열한 경쟁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10년간은 전기차가 내연기관 차보다 비싸게 판매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당초 전기차 시장에 대한 유럽의 접근법은 당근보다 채찍을 선호하는 방식이었다고 WSJ은 전했다. 유럽연합(EU)은 배출가스 규제를 꾸준히 강화해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카를 더 많이 내놓도록 압박했다. 하지만 지난해 코로나19 사태와 함께 경제 상황이 급속도로 악화하자 유럽 각국 정부는 인센티브를 통한 유인 정책으로 선회했다. 기후 변화에 앞장서는 기업과 산업에 대한 지원을 대폭 강화하기로 한 것이다. 이런 가운데 전기차 보조금 정책에도 힘이 실리면서 판매량이 늘어난 것이다.

업계에서는 세계 각국 정부의 인센티브 제도를 환영하지만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조금이 단기적인 효과를 내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구조적인 변화가 없다면 자급자족하는 시장이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다. 정부는 보조금 정책보다는 충전소 개발, 배터리 공장 건설 지원 등 시장 환경 구축에 더욱 신경 써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하칸 사무엘손 볼보자동차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전기차는 소비자들에게 충분히 매력적이고 우리는 이런 차를 만들 유인이 충분하다"면서도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최근의 보조금 정책과 세금 감면 혜택이 지속할 수 있지 않다"고 말했다. WSJ에 따르면 다수의 유럽 정부는 올해 연말에 현재의 전기차 보조금 제도를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계획을 검토 중이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