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빌라 및 아파트 전경. / 사진=뉴스1
서울 시내 빌라 및 아파트 전경. / 사진=뉴스1
정부의 25번째 대책도 신뢰를 잃고 있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의 취임후 첫 대책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특단의 대책'이라고 칭했던 2·4부동산대책이 각종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서울에 32만호를 비롯해 83만가구를 공급하겠다고 했지만, 실제 언제 어디서 얼만큼 공급될지는 불확실해서다.

1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쪽방촌 개발과 관련해서는 '재산권 침해' 논란이 제기되는 가운데 정부가 대책 발표 이후 거래에 대해서는 '현금청산'을 해야 한다고 못 박으면서 시장이 얼어붙고 있다. 투자 외에 실거주를 목적으로 집을 사기에는 불확실성이 높아져서다. 반면 거래가 가능한 물건이 줄면서 새 아파트의 인기는 더 치솟고 있다. 집값을 잡겠다고 내놓은 대책이 집값을 올리는 악순환이 이번에도 반복되는 양상이다.

2025년까지 서울에 32만가구 공급하겠다고 했지만…

정부의 2·4부동산 대책에 따르면 정부는 2025년까지 서울에 32만3000가구 등 전국에 83만호를 공급키로 했지만, 이는 용지 확보 기준이다. 특히나 서울에서 공급되는 대부분의 주택은 민간에 의지한 땅으로 정부의 계획과는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신축매입 2만5000가구, 비주택 리모델링 1만8000가구 등 4만3000가구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부지를 확보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서울 공급의 대부분은 민간의 선택에 달려있다. 정비사업(9만3000가구), 역세권(7만8000가구), 준공업지역(3000가구), 저층 주거지(1만3000가구) 등은 땅 주인이나 집주인, 세입자 등의 이해를 받아야만 사업추진이 가능하다. 정부의 장담과는 거리가 있다는 얘기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은 대책 발표후 방송에 출연해 "서울 시내에서 보수적으로 잡아도 222곳이 정부가 생각하는 사업 예정지가 될 수 있다"고 말했고, 홍남기 경제부총리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주택시장이 안정될 것이라며 "공급쇼크 수준"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국내 최대 쪽방 밀집지역인 서울 동자동 쪽방촌이 아파트단지로 개발된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가운데)이 지난 5일 동자동 KDB생명타워에서 쪽방촌 일대를 바라보고 있다.  /자료=한경DB
국내 최대 쪽방 밀집지역인 서울 동자동 쪽방촌이 아파트단지로 개발된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가운데)이 지난 5일 동자동 KDB생명타워에서 쪽방촌 일대를 바라보고 있다. /자료=한경DB
하지만 민간에 달려 있다보니 부지확보를 강제할 수는 없는데다 사업추진을 감안하면 빠른 시기에 주택이 공급되기는 불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우선 이해당사자가 동의해도 도시기본계획, 기반시설, 대지조성 등을 거쳐야 건설에 나설 수 있다. 당장 공사가 가능하다고 할지라도 아파트의 경우 3∼4년 이후에나 공급을 기대할 수 있다. 부지 확보부터 시작한다면 7∼8년 후에나 주택이 나오게 된다.

사업 추진과정에서 불거지는 재산권 및 사유재산권 침해논란도 비껴가기 어렵다. 정부가 국내 최대 쪽방 밀집 지역인 서울역 인근 동자동 쪽방촌에 대한 정비사업을 예고하자, 토지 소유자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후암특별계획1구역(동자) 준비추진위원회는 "정부가 발표한 '서울역 쪽방촌 정비사업 추진방안'에 대해 해당 지역 토지·건물주들은 결사반대한다"며 "이번 방안 발표 전 토지·건물주들과는 그 어떤 협의나 의견 수렴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특단의 대책'이라더니…새 아파트값 단숨에 1억 뛰었다
정부는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일대 4만7000㎡에 대한 정비사업으로 쪽방 주민 모두 재입주하는 공공임대주택 1250가구, 공공분양 200가구와 민간분양주택 960가구를 공급한다고 발표했다. 해당 사업에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공동사업시행자로 참여한다. 변 장관은 "공공주택특별법 상 소규모 개발 사업으로 지정됐고, 이는 주민 동의와 무관하게 공공주택을 긴급하게 필요로 하는 지역에 대해서 공공기관이 지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업이 수월하게 진행된다면, 정부가 잡고 있는 입주시기는 2026년이다. 민간분양의 경우 이보다 더 늦어져 2030년께에야 가능할 전망이다.

서울역 쪽방촌 반발…실거주 목적 빌라 거래도 '뚝'

시장에서 가장 문제로 지적된 부분은 '입주권'이다. 정부는 대책발표일인 2월4일 이후 이뤄진 거래에 대해서는 우선 입주권이 없고 현금 청산하겠다고 밝혔다. 서울 지역 빌라·다세대·다가구 등 재개발 대상지의 거래가 끊기면서 팔고 나가려는 매도희망자와 실수요자들은 곤란한 상황이 됐다.

보통 정비사업지 주택 소유자는 기존 주택에 비례하는 새 주택 입주권을 갖게 된다. 그러나 이번 정부 발표에 따라 지난 4일 이후 주택의 권리를 소유하게 되면 입주권 대신 감정가에 해당하는 현금으로 돌려받게 된다. 재개발·재건축을 추진하거나 추진할 가능성이 있는 지역의 빌라나 아파트를 샀다가 시세보다 현저히 저렴한 감정가로 강제 청산을 당할 수 있게 됐다.
'특단의 대책'이라더니…새 아파트값 단숨에 1억 뛰었다
문제는 실수요자들이다. 빌라의 경우 실거주와 투자 등 두 가지 목적으로 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당장 재개발이 안되더라도 아파트에 비해 낮은 가격에 내 집 마련을 하려는 수요자들은 이미 작년 하반기부터 빌라로 몰리기 시작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빌라 매매거래 건수는 2776건으로 아파트(2366건) 거래량을 추월했다. 빌라 거래가 아파트를 넘어선 건 지난 11월부터 이어지고 있다. 재건축의 경우 실거주 요건이 강화되면서 새로 매입하는 수요자들은 직접 거주를 선택하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 정부가 꺼내든 '현금청산' 카드는 시장거래를 되레 틀어막으면서 새 아파트로 '풍선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마용성(마포 용산 성동구)을 비롯해 동작구 등 새 아파트들이 몰려 있는 지역에서는 대책 발표 후 매도 호가가 1억원 이상 올랐다.

정부, LH-SH-지자체 손잡고 속도 높여 추진

한편 정부는 대책의 이행을 위해 속도전에 나설 방침이다. 국토부는 2·4 공급 대책을 신속히 이행하기 위해 서울시와 협력 체계를 구축키로 했다. 국토부 1차관과 서울시 부시장이 참여하는 '주택공급 사업추진 정례협의회'를 매달 열고 실장급 실무협의는 매주 개최한다.

국토부는 주택 공급 담당부서의 조직 개편과 기능 보강 등을 위해 조직체계도 개편한다. 공공시행자로서 사업을 추진할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 등 공공기관도 대책의 세부 사업별 전담부서를 정하고 사업별 인력보강에 나설 예정이다. LH와 SH는 앞으로 3개월간 설명회를 집중 실시한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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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운영 중인 정비사업 통합지원센터의 조직과 인력을 대폭 확충한다. 통합지원센터는 기존 서울 뿐만 아니라 경기와 인천, 지방 광역시에도 설치된다. LH 수도권특별본부와 광역 대도시권 지역본부의 조직과 인력도 확충한다. 서울시는 이번 대책이 조속히 이행될 수 있도록 관련 조례를 개정할 예정이다.

각종 법률개정안도 추진한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과 '공공주택 건설 등에 관한 특별법'(공주법)의 개정안에는 사업 활성화를 위해 내용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정비구역 경계 설정 제한과 부지확보 요건 강화, 도시·건축 규제완화, 세제혜택 등이 적용된다.

김하나 한경닷컴 기자 ha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