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재개발이 불붙인 빌라시장…마포 지분쪼개기 800가구 [집코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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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재개발 등 뒷북 공급대책에 훈풍
염리4·5·노고산 등 '지분쪼개기 천국'
염리4·5·노고산 등 '지분쪼개기 천국'
정부가 최근 서울 도심 주택공급 확대를 위해 8곳의 공공재개발 후보지를 선정하는 등 공공재개발 사업이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공공재개발 사업 기대감이 빌라시장에 투기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격이 급등하면서 건축허가를 통해 빌라를 짓는 ‘지분 쪼개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주택시장이 과열된 상황에서 뒤늦게 나온 공급대책의 부작용이 확산되고 있다.
◆마포 1년 새 빌라 850가구 늘어
19일 집코노미가 마포구청의 정보공개자료를 전수조사한 결과 일대 재개발 추진 지역 세 곳에서 지난해 건축허가를 받은 빌라 등 신축 다세대주택은 85채로 집계됐다. 4~5층짜리 빌라의 허가 한 건당 10가구가량 지어지는 것을 감안하면 종전보다 850가구가량 늘어나는 셈이다.
염리동 488의14(옛 염리4구역) 일대 건축허가가 34건으로 가장 많았다. 새 아파트 규모 등 재개발 밑그림이 그려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예비 조합원만 벌써 340명가량 늘어났다. 인근 염리동 81(옛 염리5구역) 주변도 26건의 신축 빌라 허가가 이뤄졌다. 이들 지역은 과거 아현뉴타운으로 묶여 재개발이 진행되던 중 정비구역에서 해제됐던 곳들이다. 주민들이 재개발을 다시 추진하면서 지난해 구역지정 사전타당성 검토 심의를 통과했다.
지하철 2호선 신촌역과 이대역 사이에 들어선 노고산동 12의204 일대는 25건의 건축허가가 이뤄진 것으로 조사됐다. 과거 단독주택재건축구역으로 지정됐다가 해제된 후 주민들이 재개발을 다시 추진하고 있다. 최근엔 개발행위제한을 위한 주민공람이 진행 중이다. 개발행위허가제한은 무분별하게 신축 주택이 늘어나는 것을 막는 조치다. 통상 구역지정 2~3년 전 이뤄져 재개발의 사전 절차로 여겨진다. 인근 A공인 관계자는 “지난해 가을엔 구청에서 아예 건축허가를 받지 않았을 정도”라며 “2019년부터 야금야금 늘던 신축 빌라까지 합치면 규모는 더 많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중개업소 관계자는 “용산구와 성북구 등 재개발 기대감이 있는 다른 지역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재개발이 가시화되면서 빌라 가격은 급등세다. 노고산동 일대 지분 15㎡ 안팎 신축 투룸 빌라가격은 지난해 4억원대에서 최근 5억5000만원 선까지 올랐다. 향후 새 아파트 입주권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국민은행이 집계한 지난해 서울 연립·다세대주택 매매가격 변동률은 8.18%로 2007년(8.87%) 이후 가장 높았다.
가격 강세 속에서도 거래는 늘었다. 지난해 서울에서 거래된 연립·다세대주택은 5만6323건으로 4년 만에 최대다. 최근엔 일반적인 빌라 공급 방식인 후분양 대신 선분양도 증가했다. 건축허가만 받은 뒤 삽도 뜨지 않은 상태에서 거래되는 것이다. 염리동 B공인 관계자는 “사업이 진행될수록 가격이 오르다 보니 입주권 자격을 선점하려는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며 “건축주 입장에서도 자금조달에 유리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불 붙는데 기름 부은 격”
단독주택을 허물고 빌라를 짓는 건 재개발사업의 분양 대상자를 늘리는 대표적인 지분 쪼개기(신축 쪼개기) 수법이다. 빌라를 건축해 여러 가구로 쪼개 팔면 늘어난 입주권만큼 수익도 커진다. 2000년대 중후반 뉴타운사업이 한창일 때도 이 같은 수법이 만연했다. 그러나 조합원이 늘고 일반분양분이 줄어드는 만큼 사업성은 하락한다. 재개발사업의 필수 요건인 노후도를 떨어뜨리기도 한다.
일선 중개업소들은 공공재개발 도입이 10여년 만에 다시 지분 쪼개기의 불씨를 당겼다고 보고 있다. 정부와 서울시가 더 이상 재개발을 억제하지 않겠다며 신호를 보낸 것으로 업계에서는 이해하고 있다. 대흥동 C공인 관계자는 “2~3년 전과 비교하면 재개발사업을 오히려 장려하는 분위기”라며 “주변 신축 아파트 값이 줄곧 오른 것도 주민들의 참여 유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공공재개발 사업지로 선정될 경우 용적률 상향 등의 혜택을 받아 가구수를 늘릴 수 있다. 지분 쪼개기로 쪼그라든 사업성을 제고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옛 염리4·5구역과 노고산동 일대는 공공재개발 사업을 신청조차 하지 못했다. 대상 구역으로 선정되면 ‘지분 쪼개기 금지일’인 권리산정일이 앞당겨져서다. 일반 재개발구역의 권리산정일은 구역지정이 이뤄질 때 고시되지만 해제·신규구역이 공공재개발구역을 추진할 땐 사업 공모일인 지난해 9월 12일로 소급된다. 이날 이후 신축된 빌라를 매수한 이들은 새 아파트를 받지 못하고 현금청산하게 된다는 의미다. 대량 청산으로 인한 갈등을 예방하기 위해선 공공재개발을 포기해야 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시장이 한껏 달아오른 상황에서 뒤늦게 재개발을 통한 주택공급 확대를 모색하다 보니 지분 쪼개기 같은 부작용이 재현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강영훈 부동산스터디 카페 대표는 “일부 구역의 경우 일반분양분이 거의 없는 사례가 나오기도 할 것”이라며 “사업이 좌초하는 곳이 생겨나면 결국 피해는 주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고 말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
◆마포 1년 새 빌라 850가구 늘어
19일 집코노미가 마포구청의 정보공개자료를 전수조사한 결과 일대 재개발 추진 지역 세 곳에서 지난해 건축허가를 받은 빌라 등 신축 다세대주택은 85채로 집계됐다. 4~5층짜리 빌라의 허가 한 건당 10가구가량 지어지는 것을 감안하면 종전보다 850가구가량 늘어나는 셈이다.
염리동 488의14(옛 염리4구역) 일대 건축허가가 34건으로 가장 많았다. 새 아파트 규모 등 재개발 밑그림이 그려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예비 조합원만 벌써 340명가량 늘어났다. 인근 염리동 81(옛 염리5구역) 주변도 26건의 신축 빌라 허가가 이뤄졌다. 이들 지역은 과거 아현뉴타운으로 묶여 재개발이 진행되던 중 정비구역에서 해제됐던 곳들이다. 주민들이 재개발을 다시 추진하면서 지난해 구역지정 사전타당성 검토 심의를 통과했다.
지하철 2호선 신촌역과 이대역 사이에 들어선 노고산동 12의204 일대는 25건의 건축허가가 이뤄진 것으로 조사됐다. 과거 단독주택재건축구역으로 지정됐다가 해제된 후 주민들이 재개발을 다시 추진하고 있다. 최근엔 개발행위제한을 위한 주민공람이 진행 중이다. 개발행위허가제한은 무분별하게 신축 주택이 늘어나는 것을 막는 조치다. 통상 구역지정 2~3년 전 이뤄져 재개발의 사전 절차로 여겨진다. 인근 A공인 관계자는 “지난해 가을엔 구청에서 아예 건축허가를 받지 않았을 정도”라며 “2019년부터 야금야금 늘던 신축 빌라까지 합치면 규모는 더 많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중개업소 관계자는 “용산구와 성북구 등 재개발 기대감이 있는 다른 지역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재개발이 가시화되면서 빌라 가격은 급등세다. 노고산동 일대 지분 15㎡ 안팎 신축 투룸 빌라가격은 지난해 4억원대에서 최근 5억5000만원 선까지 올랐다. 향후 새 아파트 입주권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국민은행이 집계한 지난해 서울 연립·다세대주택 매매가격 변동률은 8.18%로 2007년(8.87%) 이후 가장 높았다.
가격 강세 속에서도 거래는 늘었다. 지난해 서울에서 거래된 연립·다세대주택은 5만6323건으로 4년 만에 최대다. 최근엔 일반적인 빌라 공급 방식인 후분양 대신 선분양도 증가했다. 건축허가만 받은 뒤 삽도 뜨지 않은 상태에서 거래되는 것이다. 염리동 B공인 관계자는 “사업이 진행될수록 가격이 오르다 보니 입주권 자격을 선점하려는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며 “건축주 입장에서도 자금조달에 유리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불 붙는데 기름 부은 격”
단독주택을 허물고 빌라를 짓는 건 재개발사업의 분양 대상자를 늘리는 대표적인 지분 쪼개기(신축 쪼개기) 수법이다. 빌라를 건축해 여러 가구로 쪼개 팔면 늘어난 입주권만큼 수익도 커진다. 2000년대 중후반 뉴타운사업이 한창일 때도 이 같은 수법이 만연했다. 그러나 조합원이 늘고 일반분양분이 줄어드는 만큼 사업성은 하락한다. 재개발사업의 필수 요건인 노후도를 떨어뜨리기도 한다.
일선 중개업소들은 공공재개발 도입이 10여년 만에 다시 지분 쪼개기의 불씨를 당겼다고 보고 있다. 정부와 서울시가 더 이상 재개발을 억제하지 않겠다며 신호를 보낸 것으로 업계에서는 이해하고 있다. 대흥동 C공인 관계자는 “2~3년 전과 비교하면 재개발사업을 오히려 장려하는 분위기”라며 “주변 신축 아파트 값이 줄곧 오른 것도 주민들의 참여 유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공공재개발 사업지로 선정될 경우 용적률 상향 등의 혜택을 받아 가구수를 늘릴 수 있다. 지분 쪼개기로 쪼그라든 사업성을 제고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옛 염리4·5구역과 노고산동 일대는 공공재개발 사업을 신청조차 하지 못했다. 대상 구역으로 선정되면 ‘지분 쪼개기 금지일’인 권리산정일이 앞당겨져서다. 일반 재개발구역의 권리산정일은 구역지정이 이뤄질 때 고시되지만 해제·신규구역이 공공재개발구역을 추진할 땐 사업 공모일인 지난해 9월 12일로 소급된다. 이날 이후 신축된 빌라를 매수한 이들은 새 아파트를 받지 못하고 현금청산하게 된다는 의미다. 대량 청산으로 인한 갈등을 예방하기 위해선 공공재개발을 포기해야 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시장이 한껏 달아오른 상황에서 뒤늦게 재개발을 통한 주택공급 확대를 모색하다 보니 지분 쪼개기 같은 부작용이 재현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강영훈 부동산스터디 카페 대표는 “일부 구역의 경우 일반분양분이 거의 없는 사례가 나오기도 할 것”이라며 “사업이 좌초하는 곳이 생겨나면 결국 피해는 주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고 말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