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법무부 장관(왼쪽)과 윤석열 검찰총장.  /연합뉴스
추미애 법무부 장관(왼쪽)과 윤석열 검찰총장. /연합뉴스
전국법관대표회의가 7일 이른바 ‘판사 사찰 문건’을 정식 회의 안건으로 상정했으나 최종 부결 처리했다. 법관들 사이에서 ‘공식대응이 필요한 상황이 아니다’라는 결론이 나오면서 사실상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힘이 실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판사 사찰 의혹과 관련된 문건은 최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윤 총장에게 내린 징계청구 및 직무배제의 주요 이유 중 하나다. 이 문건은 당초 회의 안건에는 포함돼있지 않았지만 이날 법관 10명 이상이 찬성해 ‘법관의 독립과 재판의 공정성 확보에 관한 의안’이라는 이름으로 상정됐다. 한 법조계 관계자에 따르면 이날 회의에 참석한 120명의 법관 중 20여명이 상정에 동의했다.

법관들은 찬반 토론을 통해 안건 원안과 수정안 3~4개를 모두 부결시켰다. 원안과 수정안의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검찰의 법관 정보 수집 및 보고가 법관의 독립과 재판의 공정성을 침해할 수 있으므로 지양돼야 한다”는 식의 문구가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법관대표회의측은 “서울행정법원에서 관련 재판이 진행 중이고 앞으로 추가로 (재판이) 계속될 가능성이 있는 사안으로서 전국법관대표회의 차원의 표명은 신중해야 한다”며 “전국법관대표회의 의결이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어 “표결 결과 장창국 제주지법 부장판사가 제출한 원안과 수정안이 모두 부결됐다”며 “법관대표들은 정치적 중립의무를 준수하고 오늘의 토론이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공통된 문제의식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25일 장창국 부장판사 등은 법원 내부망에 글을 올리고 판사 사찰 문건에 대해 사법부 차원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반면 대법원 재판연구관들과 차기현 광주지법 판사 등은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날 안건이 과반수 찬성을 얻지 못하면서 판사들은 결론적으로 해당 문건에 대해 공식 대응을 하지 않았다.

법조계 안팎에선 회의 전부터 판사 사찰 문건에 대한 구체적인 후속 조치 등은 의결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서울에서 근무 중인 한 중견 판사는 회의에 앞서 “법관들의 사생활을 건드렸다는 것은 어쨌든 부적절하다”면서도 “다만 문건 수준에 비춰봤을 때 이걸 가지고 수사를 촉구한다던가 진상 조사를 해야 한다고 언급하는 건 맞지 않다”고 말했다.

이날 해당 안건이 부결되면서 오는 10일 검사징계위원회를 앞둔 윤 총장은 한시름 놓게 됐다. 판사 사찰 의혹은 추 장관 측이 윤 총장에게 중징계를 내려야 한다고 주장해 온 주요 근거 중 하나였다. 지난 1일 서울행정법원이 윤 총장에 대한 직무배제 명령 효력을 정지시킨데 이어 이날 법관들도 최종 부결로 입장을 내놓으면서 추 장관 측은 오히려 수세에 몰리게 됐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