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민이 부동산에 투자…모두가 패배자 되는 길" [강영연의 인터뷰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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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투자재 아닌 소비재
전국민이 집으로 돈 벌려고 하는 것, 정상 아니다
집을 소유하는 대신 경험하는 구독 경제 도입해야
전국민이 집으로 돈 벌려고 하는 것, 정상 아니다
집을 소유하는 대신 경험하는 구독 경제 도입해야
"나에게 집은 무엇일까" '인터뷰 집'은 이런 의문에서 시작했습니다.지난 5월 충북 제천은 인구소멸위험지역 단계에 진입했다. 대책 없이 그냥 두면 앞으로 30년 후 제천이 사라질 수 있단 뜻이다. 일부 지방 소도시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지금은 대도시로 꼽히는 부산 대구 울산 제주 등도 10년 후면 비슷한 형편일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통계청이 시·도별 장래 인구추계를 기반으로 지역별 소멸위험지수를 추산한 결과에 따르면 17개 시·도 중 12곳은 2029년까지 인구소멸위험지역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소멸위험지역은 노인인구 100명당 가임기 여성수가 50명을 밑도는 것을 의미한다.
투자 가치를 가지는 상품, 내가 살아가는 공간. 그 사이 어디쯤에서 헤매고 있을 집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오를만한 아파트를 사는 것이 나쁜 건 아닙니다. 그것으로 돈을 버는 것도 죄악은 아니겠죠. 하지만 누구나 추구해야하는 절대선도 아닐 겁니다.
기사를 통해 어떤 정답을 제시하려는 게 아닙니다. 누가 옳다 그르다 판단할 생각도 없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통해 각자가 원하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나누는 것이 목적입니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내가 원하는 집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인터뷰는 나이, 직업, 학력, 지역 등에서 최대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려합니다. 자신의 의견을 말씀하시고 싶은 분, 내 주변에 사람을 추천해주시고 싶으시다면 이메일로 연락주세요. 직접 찾아가 만나겠습니다.
저출산, 고령화가 가속화되는 가운데 서울 등 수도권으로 인구가 집중되며 벌어진 현상이다. 정부는 인구의 지방 분산을 위한 다양한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성과는 미미하다. 구독경제의 필요성을 주창하는 전호겸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집을 구매하지 않고 구독하는 것이 수도권 과밀화와 지방 공동화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4일 만난 전 교수는 "어느 한 도시에 집을 사서 평생 살아가는 대신 다양한 지역에 집을 경험하며 사는 다거점 시대가 올 것"이라며 "집도 구독할 수 있다는 생각이 퍼지면 부동산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집도 구독하는 시대 올 것
그는 일본의 모습과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일본 야노경제연구소에 따르면 2033년 일본 전체 주택의 30%가 빈 집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심각한 문제다. 일본에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서비스가 등장했다. 어드레스(ADDress)란 회사는 한 달에 4만엔(약 41만원)만 내면 최대 2주까지 머물고 싶은 곳에 살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시골의 빈집들을 매입 혹은 대여해 리모델링하고 구독자들에게 빌려주는 방식이다. 가구, 가전은 몰론 샴푸, 비누 등 생활용품까지 제공한다. 구독자들은 옷가지 등 개인 소지품만 들고와 지낼 수 있다.빈 집 문제가 해결되는 동시에 지방 소도시에 활력도 불어넣고 있다. 전 교수는 "한국에서도 비슷한 서비스가 필요하다"며 "서울 등 수도권 주민들이 한두달씩 지방 소도시에 내려가 생활하고 소비하면 지역 상권도 살아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만 고집하는 사람들의 인식 변화도 기대된다고 했다. 그는 서울에 살고 싶어하는 것은 그 밖의 지역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아서라고 진단했다. "서울에서만 살던 사람들은 지방에서 사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살아보고 싶어도 2년씩 전월세 계약을 하고 내려가려면 망설이게 되죠. 이때 1~2주에서 길게는 1~2달씩 살아보는 주거 구독 서비스를 이용한다면 부담 없이 시도할 수 있을 겁니다."
도심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구독서비스도 가능하다고 했다. 예를 들어 일본의 호스텔라이프는 도심 호스텔 숙박 서비스를 제공한다. 가격이 비싼 도쿄 도심에 집을 얻을 수 없어 출퇴근에만 몇시간씩 시간을 보내야하는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다. 서비스의 종류에 따라 1개월에 3만~5만엔(31만~52만원) 정도를 내면 도심에 있는 호스텔을 이용할 수있다.
전 교수는 "여러 곳의 호스텔을 이용한다면 가장 오래 머무는 곳에 주소도 옮길 수 있다"며 "추가 비용을 내면 숙박하지 않는 기간에도 택배, 짐 등을 보관해준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정부가 도심 호텔을 1인 가구용 부동산 대책으로 내놓은 것이 아쉽다고 했다. 전 교수는 "호텔은 취사가 어렵고 공간도 좁아 몇 년씩 살아갈 집으로는 부족함이 많다"며 "일본처럼 도심내 호텔을 활용한 구독 서비스를 고려해볼만 하다"고 제안했다.
◆부동산 투기, 모두가 패배자 되는 길
그는 집을 투자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집은 투자재가 아니라 소비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집은 추억의 집합체"라며 "나와 가족, 주변사람들과의 추억을 만들어가는 공간이지 투자 상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집을 투자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지금의 현실이 바람직하지 않다고도 했다. 전 교수는 "20~30대의 70%가 '집은 꼭 있어야 한다'고 하고 어느새 집이 없으면 루저(패배자)가 되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졌다"며 "사회 구성원 전체가 집으로 돈을 벌려고 하는 상황이 정상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온국민이 열패감을 느끼는 불행한 현실이 이어질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전국민이 투자자가 되고 전국의 부동산이 투자 상품이 된 것 같다"며 "강남에 제일 좋은 집에 사는 사람, 즉 1등만 제외하고 모두 열패감을 느끼는 비정상적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30~40대 젊은이들이 영끌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절박한 마음을 이해한다"면서도 내 인생의 척도를 집 말고 다른 것으로 삼아보라고 조언했다. 그는 "인생에 진짜 중요한 것은 가족, 건강, 행복 같은 것들"이라며 "사서(buy) 돈이 될 만한 집 대신 살아서(live) 행복해질 곳을 찾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전망이 좋은 집에 살고 싶다고 했다. 은퇴 후에는 전국을 다니며 살아보는 것이 로망이다. 전 교수는 "강아지를 키울 수 있는 정원, 멀리서라도 강이나 산이 보이는 조망을 갖춘 집에 살고 싶다"며 "어느 지역을 좋아하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여러 곳을 경험한 후 고르고 싶다"고 했다. 그는 "그때쯤이면 집 구독이 일상화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는 집에 꼭 갖추고 싶은 구성품으로 가족을 가장 먼저 꼽았다. '가족과의 추억을 만드는 곳'이 집이라는 그에게 어울리는 설명이었다. 그는 "긴 책상과 노트북도 있으면 좋겠다"며 "가족과 함께 지내며 좋아하는 글을 쓰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