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새 주택임대차보호법을 시행한 지 석 달이 지났지만 전·월세 물건은 없고 가격만 오르고 있다.  서울 한 부동산 업체 매물 안내문이 비어 있는 모습. /연합뉴스
정부가 새 주택임대차보호법을 시행한 지 석 달이 지났지만 전·월세 물건은 없고 가격만 오르고 있다. 서울 한 부동산 업체 매물 안내문이 비어 있는 모습. /연합뉴스
최근 3개월 동안 서울의 아파트 전셋값이 매매가보다 7배가 넘는 상승률을 보인 것으로 조사됐다. 새 임대차법 시행 후 전세 품귀가 심화하며 전셋값이 크게 불안해진 탓이다. 전세는 100% 실거주 수요라는 점에서 전셋값 급등으로 서민 주거 안정이 위협받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1일 한국감정원이 매주 발표하는 주간 아파트 가격동향을 분석하면 새 임대차 법 시행 이후 약 3개월 동안 서울의 아파트 전셋값 상승률은 1.45%로 조사돼 같은 기간 매매가격 상승률(0.21%)의 7배에 육박했다.

감정원은 주간 아파트 가격동향에서 '주택 매매 및 전세가격 변동률'을 기간을 설정해 누적 계산할 수 있도록 제공한다. 감정원의 월간 통계와 주간 통계는 조사 표본이 달라 같은 조사라도 두 통계의 수치가 같지는 않다.

비교 기간인 최근 3개월 동안 서울에서 전셋값이 가장 많이 오른 지역은 강남권(동남권)이었다. 이 기간 아파트값은 0.06% 오르는 데 그쳤지만, 전셋값은 2.13% 상승했다. 강남권에서는 강동구(2.28%)의 전셋값이 가장 많이 올랐고, 송파(2.22%)·강남(2.10%)·서초구(1.93%) 순으로 상승 폭이 컸다.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대치삼성아파트 전용면적 97㎡는 지난달 24일 보증금 16억원(22층)에 전세 계약이 체결되며 사상 최고 가격을 경신했다. 해당 면적은 7월 10억5000만∼13억원에 전세 거래가 이뤄졌는데, 3개월 사이 3억원에서 5억5000만원이 뛴 것이다.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아이파크 전용 84㎡도 지난달 15일 보증금 15억5000만원(20층)에 전세 거래가 이뤄져 기존 최고가를 뛰어넘었다. 7월 전세 보증금이 13억5000만∼15억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최소 5000만원에서 최대 2억원이 올랐다. 다만 같은 평형의 26층은 지난달 27일 9억9750만원에 전세 계약서를 쓴 것으로 확인된다. 2년 전 9억5000만원에 맺었던 전세 계약을 갱신하면서 보증금을 5%(4750만원) 올린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계약 갱신이 가능한 세입자라면 최근 크게 뛴 전셋값에도 비교적 저렴한 값만 내고 2년 동안 전세 걱정을 덜겠지만, 새로 전셋집을 구하는 입장이라면 시름이 깊을 수밖에 없다.

재건축 추진 아파트로 전셋값이 비교적 저렴한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 76㎡의 경우 지난달 말 6억원(2층)에 신규 거래가 이뤄져 7월 3억5000만원∼5억원 사이에서 전세 거래가 이뤄졌던 것에 비해 1억∼2억5000만원이 올랐다.

강남권을 제외하면 서울의 서북·서남·동북권 등 다른 권역의 전셋값 상승률은 서울 평균에 못 미쳤다. 서북권(은평·서대문·마포구)의 아파트 전셋값 상승률이 1.42%로 뒤를 이었고, 동북권 1.28%, 서남권 1.12% 등의 순이었다.

서북권에서는 마포구 전셋값이 1.77% 올라 강남권 구 다음으로 상승률이 높았다. 마포구 공덕동 공덕1삼성래미안의 경우 지난 1일 전용 84㎡ 전세 계약서를 보증금 8억8000만원(13층)에 썼다. 이 역시 신고가 거래이며 7월 14일 보증금 5억6000만원(14층) 전세 거래와 비교하면 약 3개월 동안 전셋값이 3억2000만원이 뛴 것이다.

이처럼 기존 세입자들은 정부·여당이 의도한 대로 새 임대차법의 혜택을 보고 있지만, 신규 임차인을 중심으로 곳곳에서 전세난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짙어지자 정부도 전세 대책을 고심하고 있다.

당초 정부는 이날 부동산 관계 장관회의를 열고 임대주택 수천 가구를 단기간에 공급하는 내용의 전세 대책 발표를 고려했으나 대책이 여물지 않아 미룬 것으로 전해졌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최근 전세 문제와 관련해 보완할 점이 있는지 면밀히 살펴보고 있지만, 아직 대책을 발표할 수준으로 정리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