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2021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는 문재인 대통령. 연합뉴스
국회에서 2021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는 문재인 대통령.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기필코 전세시장을 안정시키겠다”고 언급했습니다. 혹시 이전과 비교해 미묘하게 달라진 부분을 눈치채셨나요? 신년사나 기자회견 등 부동산 현안을 공식적으로 언급하는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대부분 ‘집값 안정’을 국정 과제로 삼아 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임대차시장 안정’으로 목표가 변한 것이죠.

물론 3년 전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도 “미친 전·월세가격을 바로잡겠다”는 선언적 발언이 있긴 했습니다. 대선 공약이기도 했던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 도입의 당위성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죠. 지금과 비교해 보면 그때의 전·월세가격은 애교 수준이지만요.

대통령이 직접 언급하고 당국이 대책을 만지작거릴 만큼 전세시장이 심상치 않습니다. 하필 미친 전·월세가격을 바로잡을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이 도입된 직후부터 말이죠. 그런데 전셋값 상승이 이들 제도의 급격한 도입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미 예고돼 있던 상황에서 기름을 부었을 뿐이죠. 연초에 부동산시장 전망을 위해 인터뷰했던 한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었습니다. “올해는 매매가격이 아니라 전셋값 움직임이 더 무서울 거예요.”

전셋값은 아파트 입주물량에 반비례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그러니까 새 아파트가 많이 준공되는 해는 전세가격이 떨어지고, 반대로 적게 준공되는 해는 오르는 것이죠. 수급 원리가 너무 분명하고 간단하게 작용하는 탓에 갭투자자들의 최우선 참고지표로 활용되기도 합니다.

민간 조사업체인 부동산114가 집계한 올해 아파트 입주물량은 전국 기준 36만4000가구입니다. 2018년(45만9000가구)과 지난해(41만1000가구)에 비교하면 각각 10만, 5만 가구가량 줄어든 물량이죠. 문제는 앞으로 전국적인 입주 감소기에 접어든다는 것입니다. 내년엔 26만5000가구가 집들이를 하는데, 공급량이 20만 가구대로 떨어지는 건 2015년 이후 처음입니다. 2022년엔 더욱 줄어들어 24만5000가구에 그칩니다.

서울은 상황이 더욱 안 좋습니다. 올해 연말까지 5만 가구가 입주할 예정인데 내년엔 2만6000가구로 반토막이 납니다. 2022년엔 이보다 더 줄어든 1만6000가구 수준입니다. 요즘 같은 임대차시장 분위기에서 입주물량까지 이렇게 급감한다면 전세가격 상승세는 더욱 가팔라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필이면 계약갱신청구권의 거부 가능 조항 가운데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상당한 보상을 지급했을 경우’가 포함돼 있습니다. 세입자에게 5000만원을 쥐어주고 내보내더라도 다음 임차인에게 보증금 1억원을 올려 받을 수 있다면 남는 장사가 되는 셈이죠. 바로 상가임대차시장의 권리금 개념이 주택시장에 들어오는 겁니다. 당장은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돌려주는 돈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 다음 세입자의 보증금으로 보전하는 비용이죠. 앞으로 전셋값이 급격하게 오른다면 이런 일이 비일비재할지 모릅니다.

그런데 청와대가 분석하는 전셋값 상승 원인은 조금 다릅니다. 최재성 정무수석이 28일 방송사 뉴스 프로그램에 나와 했던 말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직전 정부의 부동산 부양책 결과물을 현재 정부가 떠안았고, 집값을 잡기 위해 강력한 부동산 정책이 도입됐으며, 이 같은 정책 탓에 매수수요가 줄어들면서 전세수요가 늘어났고, 가구 분화가 진행되면서 수급 불균형까지 왔다는 것입니다. 집값 책임론엔 늘 직전 정부가 만능키처럼 등장해왔지만 가구 분화는 이번에 새롭게 마련한 논리전개네요.

그래서 궁극적 대책으로 거론한 게 질 좋은 임대주택, 중산층도 살 수 있는 임대주택입니다. 문 대통령의 시정연설에서도 같은 이야기가 나왔죠. 아, 10년 전에도 있었군요. ‘오세훈 아파트’로도 불렸던 장기전세주택(시프트)입니다. 그런데 시프트의 신규 공급이 사실상 끊기고 있는 이유를 당국자들이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무주택 중산층을 위한 양질의 공공주택이었지만 현실적 문제가 많았습니다. 보증금 수익은 제한된 반면 사업 주체의 비용은 계속 증가하는 구조인 데다 월세가 아닌 전세인 것도 현금흐름을 막습니다. 중산층에 초점을 맞춰 ‘너무 낮지 않은 임대료’를 책정하면 빈집도 많고요.

분양주택이든 임대주택이든 중요한 건 공급시기입니다. 사실 당장 공사를 시작해도 이번 정권이 끝나기 전에 필요한 물량을 공급하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아파트 건설은 1~2년짜리 사업이 아니기 때문이죠. 그래서 정책의 일관성이 중요하고 착실히 농사를 해야 합니다. 다음 정부가 이번 정부 탓을 하지 않게 하려면 말이죠.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