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판지 원재료(원지)를 생산하는 대양제지 화재로 촉발된 골판지 가격 상승세가 최종 생산품인 골판지 박스 시장에도 영향을 주는 등 연쇄 파장을 낳고 있다. 골판지 원지업체들이 가격을 올리자 중간재인 원단 생산업체들이 단가를 인상하면서 박스 제조업체까지 타격을 받고 있어서다.

▶본지 10월 15일자 A18면 참조

영세한 골판지 박스업계는 줄도산을 우려하고 있다.

골판지 가격 35~40% 인상 가능성

25일 골판지업계에 따르면 지난 12일 대양제지 화재 이후 주요 원지 생산업체인 태림페이퍼와 아진피엔피가 원지 가격을 20~25%가량 올렸다. 올 들어 골판지 생산에 들어가는 폐지 물량이 급감한 데다 이달 중순 국내 골판지 원지 생산량의 7.4%를 차지하는 대양제지 경기 안산공장에서 화재까지 겹치면서다.

이어 지난 16일엔 태림포장 등 원단업체들이 골판지 박스업계에 가격 인상을 통보했다. 정확한 인상 폭은 확정되지 않았으나 조만간 가격을 약 15% 올릴 것으로 골판지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원지와 원단 가격 인상 폭을 모두 합하면 골판지 박스업계로 전가되는 인상 폭은 35~40%에 이를 전망이다.

현재 박스 가격은 한 겹으로 된 ‘싱글’지(紙)가 ㎡당 320원, 두 겹의 ‘더블’지가 ㎡당 420원 선이다. 만약 40%의 인상 폭이 박스업계에 고스란히 전가되면 박스 생산 단가는 싱글이 128원, 더블은 약 168원의 인상 요인이 발생한다.

박스업계는 이를 납품 가격에 곧바로 반영하기도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박스를 사용하는 대기업은 물론 중소업체의 가격 저항이 심한 탓이다. 김정열 한국박스산업협동조합 부장은 “골판지업계 최하위에 있는 박스 제조업체들이 가격 인상분을 모두 떠안게 되면 전국 2000여 개 영세 박스 제조사들이 연쇄 도산해 업계의 공멸을 불러올 수 있다”고 말했다.

메이저·영세업체 갈등 재연 조짐

골판지 가격 인상이 본격화하면서 골판지업계 내부의 메이저·영세업체 간 해묵은 갈등도 재연될 조짐이다.

골판지 시장은 골판지 원료인 원지를 비롯해 골판지 겉면 및 구불구불한 골심지 등을 생산하는 골판지 원단, 골판지 박스 등 세 단계 생산 과정별로 구성돼 있다. 이 중 태림페이퍼, 대양제지, 신대양제지, 아세아제지, 한국수출포장, 고려제지 등 5~6개 주요 메이저업체는 원지부터 박스까지 모두 생산하는 수직 일관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이들 메이저업체가 원지 생산의 80%, 원단은 70%, 박스는 45%를 차지하고 있다. 이외 나머지 시장을 중소·영세 골판지업계가 채우는 구조다.

중소·영세 골판지업계는 원재료부터 제품까지 모두 생산하는 메이저업체들이 급격한 가격 인상을 주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김 부장은 “메이저사들은 자신들의 계열사에는 납품 단가를 올리지 않거나 늦게 올리는 방식으로 영세한 중소 골판지업계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메이저사인 태림페이퍼 관계자는 “대양제지 화재 이전에도 수급 불균형이 심화된 환경이어서 제지 가격 인상은 불가피했던 상황”이라고 했다.

“수입 폐지 신고제 개선해야”

골판지업계는 급격한 가격 인상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면 수급 불균형을 해소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김진무 한국골판지포장산업협동조합 전무는 “골판지 원단의 수출 물량을 줄여 시장 충격을 분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7월부터 국산 폐지 사용을 장려한다는 취지로 환경부 주도로 시행된 수입 폐지 신고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수입 물량이 크게 줄면서 제지 가격 인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어서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 6월 4만8018t이던 폐지 수입량은 7월 3만1486t, 8월 3만2951t으로 줄어든 상태다. 김 전무는 “제지업체들이 수입 폐지 신고제를 적용받지 않는 고급 원지 수입을 늘릴 수밖에 없어 산업 측면에서 보면 부작용이 큰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이정선 기자 leew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