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5일 스티브 잡스 애플 공동 창립자의 별세 소식이 전해지자 “잡스를 대체할 사람이 없다” “애플이 큰 위기에 직면했다”는 진단이 잇따랐다. 시장은 잡스로부터 지휘봉을 넘겨받은 팀 쿡 최고경영자(CEO·사진)에 대해 “잡스에게 느껴졌던 카리스마가 없다”고 평가절하했다.

그로부터 약 8년10개월 뒤인 지난 19일. 애플은 미국 상장사 중 처음으로 시가총액 2조달러를 넘어섰다. CNBC는 “애플이 시총 1조달러를 달성하는 데는 42년이 걸렸지만 2조달러를 돌파하는 데는 2년밖에 안 걸렸다”고 보도했다. 애플 주가는 지난 21일에도 5.15% 오른 497.48달러를 기록했다. 잡스 사망일(54.04달러) 대비 9.2배 급등했다. ‘팀 쿡 호(號)’ 애플이 포스트 잡스 시대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는 평가가 나온다.

"잡스 없인 망한다"던 애플…팀 쿡, '꿈의 시총 2조弗' 키운 비결
애플 주가는 올해 저점 대비 122% 올랐다. 미 중앙은행(Fed)이 ‘무제한 돈 풀기(양적완화)’에 나서면서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등 디지털 ‘빅테크’ 기업에 돈이 몰렸다. 최근 액면분할 결정, 5세대(5G) 이동통신 스마트폰인 아이폰12 출시 기대감도 호재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안정적인 사업 구조가 주된 배경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올해 2분기 매출은 596억90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1% 증가했다. 사상 최대 분기 실적이다. 특히 서비스 부문의 성장 속도가 가파르다. 2분기 서비스 부문 매출은 131억6000만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15% 늘었다. 이는 전체 매출의 22%에 이른다.

애플은 2015년 아이폰의 판매 성장세에 제동이 걸린 이후 아이튠즈, 앱스토어(앱장터), 애플페이 등 서비스 부문에 집중했다. 애플 뮤직과 아케이드(게임), 애플TV+, 애플뉴스+ 등 구독형 서비스도 강화하고 있다. CNBC는 “투자자들은 애플을 더 이상 아이폰 제조사가 아니라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보고 있다”며 “애플은 사용자들이 자신들의 서비스 생태계를 벗어날 수 없도록 만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애플을 새로운 성장 궤도에 올린 쿡의 리더십이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쿡은 CEO를 맡은 이후 “내가 해야 할 일은 잡스를 따라하지 않는 것”이라고 줄곧 말해왔다. 잡스를 따라하려는 순간 실패의 길을 걷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지독한 ‘워커홀릭’이다. 매일 새벽 4시 전에 일어나 글로벌 판매 자료를 살핀다. 매주 금요일에는 경영진 및 재무팀과 회의를 한다. 이 회의는 저녁까지 길어지는 날이 많아 ‘팀과의 데이트’라는 별칭이 붙었다. 다이어리에는 개인 약속이 거의 없다고 한다. 직원들에게 피눈물을 안길 정도로 완벽주의자로 평가된다. 중간 관리자들은 쿡과의 회의가 잡히면 초긴장 상태가 된다.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면 질타가 쏟아지기 때문이다. 쿡의 질책을 받고 눈물을 흘리면서 회의실을 뛰쳐나간 직원도 적지 않다. 쿡은 2014년 동성애 커밍아웃을 하며 언론 기고문을 통해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이들에게 힘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투자자 및 정부 관계에선 유연성을 발휘한다. 애플의 주요 투자자였던 ‘기업 사냥꾼’ 칼 아이칸은 2013년 “애플이 투자자에게 수익을 더 분배하라”고 압박했다. 쿡은 사내 자문단의 반대에도 칸의 요구를 수용해 300억달러의 자사주를 매입했다. 이는 워런 버핏이 애플 주식을 사야겠다고 한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WSJ는 전했다. 쿡은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자로 평가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그와 수차례 골프를 칠 정도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