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19일, SBS TV 코미디 프로그램 '웃찾사-레전드 매치'의 '실화 개그' 코너에서 개그우먼 홍현희는 피부를 검게 칠하고 파와 배추 등으로 우스꽝스럽게 분장한 채 등장했다가 흑인 비하라는 지적을 받았다.

이튿날 호주 출신 방송인 샘 해밍턴은 SNS(사회적관계망서비스)에서 "진짜 한심하다.

도대체 이런 말도 안 되는 행동 언제까지 할 거야? 인종을 그렇게 놀리는 게 웃겨? 예전에 개그 방송 한 사람으로서 창피하다"라고 꼬집은 뒤 "만약 제가 한국인 흉내 내려고 분장했으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할까요?"라고 일침을 가했다.

프로그램 제작진도 21일 공식 사과하고 온라인에서 해당 영상을 삭제해 논란은 잦아드는 듯했다.

그러나 22일 개그맨 황현희가 SNS에 "단순히 분장한 모습을 흑인 비하로 몰아가는 형의 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는 어떻게 해석되냐면 영구, 맹구라는 캐릭터는 자폐아들을 비하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고, 예전에 한국에 '시커먼스'라는 오랫동안 사랑받았던 개그란 것도 있었어. 그럼 그것도 흑인 비하인 건가?"라고 반박했다.

<황현희, 궁지 몰린 홍현희 대변했다가 '역풍'>, <개그맨 황현희, 샘 해밍턴의 흑인 비하 지적 발끈했다가 '뭇매'>란 기사 제목처럼 황현희는 네티즌의 집중포화를 맞고 글을 내렸다.

홍현희도 26일 SNS에 "사려 깊지 못한 개그로 인해 상처 입은 분들께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2020년 8월 6일, 해마다 재기 넘치는 콘셉트로 졸업 기념사진을 찍는 것으로 이름난 경기도 의정부고 학생들이 얼굴을 검게 칠하고 관을 든 이른바 '관짝소년단' 사진과 글을 올렸다.

관을 메고 흥겨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가나 사람들의 장례 풍습을 패러디한 것이다.

가나 출신의 방송인 샘 오취리는 6일 SNS에 글을 올려 "2020년에 이런 것을 보면 안타깝고 슬퍼요.

웃기지 않습니다.

저희 흑인들 입장에서 매우 불쾌한 행동입니다"라면서 "제발 하지 마세요.

문화를 따라 하는 것은 알겠는데 굳이 얼굴 색칠까지 해야 돼요? 한국에서 이런 행동들 없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부탁했다.

이를 두고 네티즌들은 "어디서 가르치려 드냐",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등의 악성 댓글을 달았다.

한글과 달리 영어로 올린 글에서는 '무지하다'는 뜻의 'ignorance'라는 단어를 쓰고 'teakpop'(티타임과 K팝을 더한 단어로 K팝 가십을 뜻함)이라는 해시태그를 붙인 것을 두고 악의적이라는 비난도 쏟아졌다.

그가 JTBC 예능 프로그램 '비정상회담'에서 손가락으로 눈을 양옆으로 찢는 동양인 비하 행동을 했다는 폭로도 나왔다.

그러자 샘 오취리는 "학생들을 비하하는 의도가 전혀 아니었다"면서 "한국에서 오랫동안 사랑을 많이 받았는데 이번 일들은 좀 경솔했던 것 같다.

다시 한번 죄송하다는 말씀드리고 싶다"고 사과했다.

이를 두고 언론은 <'동양인 비하' '케이팝'까지 건든 샘 오취리…'당신 나라로 돌아가 달라' 역풍">, <샘 오취리 사과, 역풍 자초한 '무지함'> 등의 제목을 달아 보도했다.

샘 오취리의 발언을 옹호하는 네티즌 글과 언론 보도도 나오고 있으나 샘 오취리를 추방하라거나 방송 출연을 금지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한 상태다.

비슷해 보이는 두 사건의 진행 경과가 왜 이렇게 다른 것일까? 물론 자세히 따져보면 차이점이 몇 가지 있긴 하다.

흑인 분장을 한 주인공이 2017년엔 연예인이고 2020년엔 평범한 고교생이다.

홍현희는 과장과 파격으로 웃음을 주려 했고 고교생들은 실제 모습과 닮게 보이도록 꾸몄다.

패러디 대상이 된 가나 장례 댄스팀 벤저민 아이두도 "(고교생들의) 졸업을 축하한다"며 불쾌감을 표시하지 않았다.

샘 오취리는 예전에 동양인 비하 행동을 한 적이 있고, 영어로 쓴 글에도 오해를 부를 만한 대목이 있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처럼 네티즌들의 반응이나 언론 보도가 극단적으로 엇갈리고 인종차별을 비판한 외국인이 궁지에 몰리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도대체 지난 3년여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지난해 4월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8년 국민 다문화 수용성 조사' 결과에 따르면 3년 전보다 이주민을 차별적으로 대하는 태도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주민의 급격한 증가, 경기 침체와 취업난, 자국우선주의와 민족주의 대두 등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반다문화 현상이나 이주민 혐오 표현 등이 급증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샘 오취리가 만일 흑인이 아니고 백인이었다고 해도 한국 네티즌들이 "건방지게 누굴 가르치려 든다"라거나 "한국에서 돈 쉽게 버니 우습게 보이나"란 반응을 보였을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2017년 11월 10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진 한국과 콜롬비아 축구 대표팀의 평가전에서 콜롬비아의 에드윈 카르도나 선수가 한국의 기성용 선수를 향해 눈 찢기 제스처를 취했다.

카르도나 선수와 콜롬비아 축구협회가 사과의 뜻을 밝혔지만 네티즌들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네티즌들이 쏟아낸 비난의 글 가운데는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가 감히…"라거나 "지들도 유색인종인 주제에…"라는 것도 눈에 띄었다.

가난한 나라 출신을 무시하고, 이주민 가운데서도 유색인종(특히 흑인)을 더 차별하는 이중잣대를 드러낸 것이다.

피부를 검게 칠하는 '블랙페이스'는 흑인 노예가 존재했던 미국에서는 한동안 흑백 차별의 상징이었으며 지금은 구미에서 금기시된다.

학생들이 아무리 흑인을 희화화할 의도가 없었다 해도 우리가 욱일기 문양을 보고 일제 식민지배를 떠올리는 것처럼 흑인들은 블랙페이스를 차별과 비하의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패러디의 대상이 흔쾌히 받아들였더라도 다른 사람이 느낀 불쾌감과는 별개 문제이며, 샘 오취리의 동양인 비하 행동 역시 그 자체로 잘못된 일이지만 그것 때문에 블랙페이스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더욱이 그런 지적을 흑인이 했다고 해서 못마땅하게 여긴다면 다문화 감수성이 부족한 것이다.

사과를 샘 오취리가 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모든 흑인에게 해야 한다.

/연합뉴스